문화예술공연
장호정 개인전 《익명의 밀도: 신종감각기관》
- 분야
- 전시
- 기간
- 2026.10.20.~2026.10.25.
- 시간
- 화~일요일 11~19시
- 장소
- 인천 | 인천아트플랫폼
- 요금
- 무료
- 문의
- +82 (0)32-76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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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수집된 데이터는 따뜻할까? 차가울까?: 신종감각기관의 감각
콘노 유키
사람들은 전시장까지 어떻게 왔을까? 오늘날 이동 수단은 굉장히 많아졌다. 걷기, 자전거 타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이동수단이 내 소유물일 때도 있고, 렌터카나 따릉이와 같은 공유경제에 기반한 경우도 있다. 도착지와 목적지가 있을 때, 경로는 효율성에 따라 설정되기도 한다. 얼마나 일찍 도착하느냐가 중요한 길은 우리가 알던 길과는 다르다. 헤맬 일 없이 제시된 안내를 따라 제시간에 도착하기. 이동한다는 것이 점점 쉽고 가벼워졌다. 그렇게라도 가벼워져야지 도시의 밀도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일까? 사람이 오가고 물류와 교통이 활발한 장소는 밀도에 차 있다. 우리는 인구와 유통량, 교통량이 건물 사이를 쉴 새 없이 통과한다.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삶을 보내고 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지금 있는 곳과 유리된 감각을 종종 받기도 한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움직인다기보다는 외적 요인에 의해서 움직이게 된다. 내가 나도 모르게 익명화되어 살아가고 사라지는 삶. 그러면서도 내 핸드폰에는 걸음 수, 이동 경로, 심박수 등등이 데이터로 기록되어 들어온다. 수집된 데이터가 핏줄처럼 내 안으로 들어온다.
멀리서 장호정의 작품을 본다. 영상 설치 작업에서 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빛을 세어 봐도, 우리는 세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이다. 그만큼 빛은 하나와 다수를, 점멸의 시작과 끝을 계속 돌아가면서 관객 앞에 나타난다. 선으로 기록된 익명성이 한 지역 안에서 중첩되어 간다. 장호정이 주목한 익명성은 도시에 쌓여간 사람들의 흔적, 즉 그들의 신체가 머물던 곳에 있다. 이 수집된 데이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이 지나간 흔적만을 담는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따릉이로 이동했을 때 기록된 데이터는 지도 위에 선으로 그려진다. 장호정은 이 공개된 데이터를 작품 소재로 다룬다. 선들로 이루어진 광경이 가져다주는 것은 익명성의 누적뿐만 아니다. 작가의 시선은 시각적 흔적으로 기록된 것 너머를 바라본다. 익명성끼리 경로가 만날 때, 작품은 심미적 인상뿐만 아니라 한때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자신이 선을 이렇게 그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만날 일도 없었다. 여기에 들어온 익명성이란 장호정에게 사라진 것이 아닌, 사라지면서도 남는 것이 아닐까. 개별적인 존재는 흐려져 사라지지만,
장호정은 전에 회화 작업으로 비닐봉지를 그린 것과 이번 개인전의 주제를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비닐의 주름이 한 사물에 남은 시간의 흔적이었다면, 데이터의 밀도는 수많은 존재가 지나간 뒤 시대의 표면에 남는 또 하나의 주름일지도 모른다.” ─ 작가 노트 중
이전 작업에서는 펴지지 않던 시간이 회화라는 형식을 통해 겉으로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시각화된 익명의 선들도 안으로 접힌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으로, 심지어 명멸하는 빛으로 남을 때, 그 안에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떠올릴 수 있을까? 누적된 선들은 사라졌지만, 데이터로 수집되어 있다. 과거 비닐의 표면에서 발견했던 주름은 이제 도시의 움직임을 감각하는 공간적 구조로 이어진다. 다른 시간을 제각기 지나간, 흔적상의 사람들이 장호정의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그렇게 흔적으로만, 흔적끼리 만나게 되는 삶이 눈앞에 있다. 도착한 곳에 주목하는 대신, 금방 떠나버리는 이 과정을 따라가 본다. 거기서 한 줄기 빛은 사람의 흔적을 담는 데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그 안으로 시선을 계속 보내게 하는 주름이 된다.
선과 점으로 흔적들이 모였을 때 그 밀도는 따뜻할까? 아니면 숨 쉴 틈도 없이 답답하기만 할까? 데이터로 받아들인다면, 계산적 정보에 불과하고 차갑기만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곳을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은 있었다. 하나의 통과 지점이 아닌 여러 개의 길이 그 안에, 각기 다른 방향에서 그려진다. 흔적이 과거의 것이 아님을 말하기라도 하듯이, 영상 작업에서는 부감하는 시선뿐만 아니라 안으로 통과하는 묘사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익명성의 흔적에 대한 장호정의 관심은 적어도 체계에만 있지 않다. 작가가 제목에 가지고 온 ‘신종감각기관’이란 데이터를 생산하고 통합하는 시스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신종감각기관은 기술적 시스템의 이름이면서, 그 시스템이 미처 감각하지 못한 존재의 흔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예술적 장치가 된다. 도시에 혈관처럼 퍼진 이 흔적들은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로 통계를 남기고 수치화되고 계산되는 이면에 있는, 이미 지나갔지만 있었던 감각을 살리는 것이 장호정이 말하는 ‘신종감각기관’의 한 측면이다. 어쩌면 신종감각기관이란, 이미 지나가 버린 존재들을 다시 감각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해진 또 하나의 눈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