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공연
이나림 개인전 《눈이 타오르는 비탈》
- 분야
- 전시
- 기간
- 2025.12.13.~2025.12.28.
- 시간
- 수~일요일 13~18시
- 장소
- 서울 | 예술공간 의식주
- 요금
- 무료
- 문의
- necessaries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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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눈이 내리는 계절
무게를 지닌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아래를 향한다. 이것은 이 행성을 지배하는 중력의 법칙이자,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순리다. 하늘에서 만들어진 눈과 비가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허공을 부유하던 미세한 먼지들이 바닥에 켜켜이 쌓이듯, 우리의 생 또한 언젠가는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앉아 멈추게 된다. 이나림의 개인전 《눈이 타오르는 비탈》은 이 하강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불안이자 동시에 가장 평온한 안식처인 ‘죽음’과 ‘소멸’을 응시한다. 작가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억지로 붙잡거나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너져 내리고, 녹아내리고, 바스러져 바닥에 닿는 과정을 묵묵히 목도한다. 내려앉는 것들을 응시하면서 패배나 종말을 넘어서는 지속의 현상을 드러낸다. 이것은 부유하던 존재가 스스로의 고유한 무게를 자각하고, 땅에 안착하는 안녕의 과정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위태로운 삶의 비탈을 잠시 멈추고 필멸하는 것들의 아름다운 하강을 마주하게 된다.
초와 꽃
이나림은 사라짐과 나타남의 끊임없는 주기 안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애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초’와 ‘꽃’은 이 연대를 상징하는 가장 연약하고도 강력한 매개체다. 빛을 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소진하는 초, 그리고 끝내 눈물처럼 흐르는 뜨거운 촛농, 그리고 가장 화려한 순간에 꺾여 제단 위에 바쳐진 꽃. 이들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산 자들의 염원이자, 먼저 떠난 이들의 넋을 기리는 도구다. 작가의 시선에서 촛농이 녹아 흘러내리는 모습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눈이나 비의 운동성과 교차한다. 비가 대지를 적시고 스며들듯, 녹아내린 초는 형체를 바꾸어 바닥으로 스며들거나 굳어지며 자연스레 다른 장소로 흡수된다. 불특정 다수의 죽음,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 불가항력으로 사라지는 존재들. 작가는 흩날리는 먼지와 떨어지는 촛농, 시들어 고개를 떨구는 꽃들, 그리고 뭉개져 버린 생일 케이크를 통해 우리 곁을 스쳐 간 수많은 상실을 호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