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공연
《포개진 지도》 미시적이지만 거시적인 풍경
- 분야
- 전시
- 기간
- 2026.10.17.~2026.10.23.
- 시간
- 12:00 - 19:00
- 장소
- 서울 | 갤러리 지하
- 요금
- -
- 문의
- 갤러리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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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정성훈의 풍경은 지도 위에 핀을 꽂을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장소에서 출발한다. 집을 나서면 마주치는 도로의 구조물, 매일 건너는 횡단보도와 계단, 이동 중에 스치는 건축물의 한 모서리 같은 것들이다. 작가는 한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오간 공간의 이런 작은 부분들을 사진이나 기억으로 채집한다. 이 파편들이 캔버스 위에서 다시 포개어지면, 그것은 한 사람의 동선을 넘어 누구나 한 번쯤 지나왔을 법한 보편적인 풍경이 된다. 이번 전시는 미시적인 장소의 감각이 거시적인 공간의 경험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들여다본다.
작가는 새로운 공간에 놓일 때마다 낯선 곳에서도 익숙한 무언가를 찾으려는 본능과, 지금 이 순간의 이질적인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된다. 그래서 그에게 공간의 기억은 하나의 선명한 장면으로 남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감각이 포개어지면서 어떤 부분은 또렷이 남고, 어떤 부분은 다른 기억 밑에 묻힌 채 층을 이룬다. 전시는 이렇게 겹쳐진 기억을 서로 다른 시간의 단위로 종합해 보인다.
《축선》은 하루의 단위다. 집을 나서 다시 돌아오기까지 마주한 도로, 횡단보도, 계단, 차도의 풍경이 2.5미터가 넘는 하나의 긴 축 위에 이어 붙는다. 각각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온 독립된 조각이지만, 하루라는 흐름 안에서 하나의 연속된 경험으로 묶인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분절과 장맛비의 흔적은 장면들을 느슨하게 잇는 동시에 그 형태를 흐린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계절의 이질적인 감각이 스며든다.
《새벽에서 밤까지》는 그 시간을 몇 해로 늘린다. 수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드나든 구체적인 장소들의 이미지가 각기 다른 형태의 프레임에 담긴다. 이 프레임들은 실제의 지리적 위치와 시간대에 따라 수직과 수평의 규칙 속에 배치된다. 개별 프레임은 하나의 순간이자 하나의 장소이지만, 전체는 새벽에서 밤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이미지로 종합된다. 한편 《골목길》은 특정한 길이 아니라, 수많은 길의 경험을 아우르는 개념으로서의 길을 제시한다. 서로 다른 방향의 화면이 맞닿아 있지만 그 사이의 틈은 지워지지 않는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한 줄의 선은 파편들을 하나의 축으로 묶으면서도 그 이격을 드러낸다. 매일 걸으며 누적된 연결과 단절의 감각이 이렇게 하나의 차원으로 압축된다.
이 풍경들은 하나의 매끈한 화면으로 봉합되지 않는다. 작가는 합판과 점토, 캔버스를 겹겹이 쌓아 올린 분절된 지지체 위에 추상적인 레이어와 구상적인 이미지를 교차시킨다. 두 층은 서로를 가리거나 드러내며, 기억 속 공간이 또렷해지고 흐려지는 과정을 화면 위에 옮긴다. 파편과 파편 사이의 틈 역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작은 장소들은 큰 풍경 안에서도 제 윤곽을 잃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한 사람의 구체적인 하루가 보이고, 한 걸음 물러서면 우리 모두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전시는 그 두 거리 사이에서, 한 사람의 일상적 공간이 저마다의 일상적 공간과 포개어지는 지점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