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공연
《Saran Penyajian》
- 분야
- 전시
- 기간
- 2026.08.18.~2026.08.29.
- 시간
- 화~토요일 12~18시
- 장소
- 서울 | 온에어갤러리
- 요금
- 무료
- 문의
- 0507-1405-8842, info@onair.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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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인도네시아산 과자 포장지에서 발견한 작은 문구. 고딕체로 인쇄된 Saran Penyajian(사란 쁘냐지안)은 인도네시아어로 ‘연출된 이미지입니다’, ‘예시 이미지’를 뜻한다. 문구가 쓰인 이미지는 먹음직스럽기 위해 막상 실제 과자의 모양이나 색과 다를지라도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귀띔하는 것이다. 하나의 제안으로서 우리에게 커피나 우유를 과자와 함께 먹는 연출된 맛을 권장한다. 포장지를 본다면, 이미지가 먼저 각인되고 낯선 그 작은 글씨는 쉽게 읽히 않는다. 그러나 조용히 이 투박한 검은 문장은 이미지가 가짜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하나의 Saran Penyajian이다. 세계를 재현하거나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제안되는 감각의 장면이다. 전시에 참여하는 14명 작가는 명료한 무언가를 말하기보다 일시적으로 다른 시간성과 빈 공간을 만들어낸다. 여기선 비어 있음이 더 중요할 수 있으며 빛과 공기, 그림자와 같이 손으로 쥘 수 없는 것들이 오히려 자리를 차지한다.
2층에서 마주하는 김근모의 〈The 150 Axis Unshakable〉(2026)는 하나의 수직축을 중심으로 기울어진 사각 파이프들이 서로 다른 각도로 서있다. 임시적으로 맞춰진 균형은 긴장감을 주며, 서로의 표면이 반사되면서 생긴 그림자는 작품의 외연을 확장시킨다. 김정민의 〈겹쳐진 공간의 구조〉(2025)의 격자 무늬 직육면체는 덩어리감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 안에 반복적으로 철골 프레임이 중첩되면서 결국 텅 빈 전시 공간 속의 또 다른 공간을 형성해낸다.
김영호의 〈공백이 나열될 때〉(2025/2026)를 구성하는 규격화된 수백개의 은색 풍선들은 지루한 질서와 반복을 의미한다. 또한 충분히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지만 답답하게 바닥에 붙어 있는 풍선들 위로 솟아있는 형상은 마치 풍선이 남긴 빈자리로 보이며, 그 틈에서 또 다른 존재 방식을 드러낸다.
일상은 인간의 차지가 될까? 노동에서 창작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AI에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자원이 투입되는 현실 속에서 그 이면에 소외되는 건 누구일까. 박세준은 캔버스에 인공지능이 만든 텍스트나 이미지를 뒤로 배치하고 자연의 형상과 작가의 붓질을 덧입힌다. 기계가 생성한 이미지 위에 축적된 손의 흔적은 회화의 물질성과 신체성을 환기하며, 이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자연의 존재를 불러낸다.
신기운은 다양한 장소를 이동하면서 경험한 공간을 전시장에 구현한다. 2층과 3층에 각각 설치된 영상 2편은 작품 제목과 동명의 장소를 촬영한 것이다. 작가가 머물렀던 뉴욕의 은행과 스튜디오는 이곳에 옅게 투영되어 이곳의 공간과 기억으로 연결된다. 사라질 듯한 얇은 막의 화면은 또 다른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3층에서는 시를 쓴 흔적 혹은 쓰고 있는 손을 보게 된다. 우사화는 정해진 시간에 쓴다. 그는 잠 속에서 분주히 이동하는 영혼에 대해 쓴다. 흩뜨려진 종이 위의 문장들, 그것을 원하는 이는 무엇이든 선택해 데려갈 수 있다. 그가 쓴 문장을 쥐면 어느샌가 배관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콘크리트 구멍, 벽과 벽 사이의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낮추면 이소희의 〈세실〉(2026)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이 바닥에 늘어져있다. 증발해버린 장소를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 세실은 작가가 어릴적 살던 부산 동네의 옛 명칭으로 약 100년 전엔 온천이 있었던 곳이다. 이미 말라버린 온천을 작가는 이미지로 간직한, 종종 꺼내보는 카와 이젠(Kawah Ijen)의 푸른 분화구를 닮은 빛과 색으로 물기를 되돌린다.
장준호는 가지치기를 당한 나뭇가지를 주워 정성스레 다듬고, 가지의 고유한 곡선으로 새로운 조형을 구성한다. 〈하나의 선〉(2022)과 〈4개의 점을 위한 6개의 선〉(2022)에서 잘려나간 나뭇가지는 끝난 생명이 아니라 또 다른 선이 된다. 또한 이곳의 바닥면과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과 연결된다.
4층은 가장 가벼운 것들로 채워진 공간이다. 류호열은 원자 너머 또 다른 물질의 가능성을 상상한다.〈Matrix〉(2026)의 입자 형태는 뜨거운 햇빛과 습한 바람, 흘러내리는 땀, 그리고 우리의 몸을 이루는 보이지 않은 물질을 연상시킨다. 빛과 색 역시 보이지 않는 입자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박현주는 아득한 기억에 대한 알 수 없는 애틋함을 오로라를 빌려 표현한다. 〈AURORA〉(2026)에서 휘날리는 빛의 막은 나무에 새겨져 우리 앞에 머문다.
물은 흔들리는 풍경을 반사한다. 고봉수의 〈mythological scene-floating water〉(2024)는 이질적인 표면이 공존하며, 수면은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기호적 의미를 가진다. 안개, 얼룩, 지층과 같은 희미한 흔적과 매끈한 물결은 명확한 장소가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는 통로가 된다.
김성윤은 기계를 ‘기술적 개체’, 즉 스스로 자신의 좌표를 설정하고 환경과 관계맺는 존재로 바라본다. 4층에 떠있는〈중력과 부유력사이〉(2026)는 이전 보다 미세하게 약해진 중력을 느끼며 센서와 프로펠러를 통해 스스로의 위치를 조정하고 있다. 그의 조각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이곳과 계속 상호작용하는 존재가 된다.
김서영의 〈work 003 Floating Memory Structures〉(2025)는 절개된 큐브로 안과 밖을 관통하며, 보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빛과 색으로 재구성된다. 함께 놓인 한윤제의 〈멤-션 물방울〉(2026)는 물방울 형태로 빛이 통과하는 구조로, 적극적으로 빛을 받아들이고 반사한다. 다양한 색을 방출하며, 이 작품 또한 관객의 위치에 따라 색과 그림자가 변화한다. 이 작품들의 투명함은 덧없는 순간을 붙잡아 공간으로 확산된다.
박효근은 늙어가는 인간의 몸을 조각 조각 뜯어낸다. 〈흔적〉(2026)은 귀, 손가락, 매끈한 살점들로 이뤄져있다. 작가는 몸을 시간이 쌓이고 축적된 표면으로서 질량이 있는 신체가 아닌, 파편화된 기억의 형태로 표현한다. 뜯어진 부위와 살점은 결국 완전한 윤곽을 가지지 못하고, 그 사이를 걸어다니는 몸에 다시 스민다.
이처럼 작품들은 하나의 진실을 좇지 않는다. 각각의 조각과 회화, 설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바꾸고, 시간을 머금으며, 하나의 감각을 제안한다. 12일이 지나면 사라질 전시는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잠시 이곳은 동사적으로 시를 쓰는 시간, 언덕을 오르는 시간 그리고 계단을 오르며 작품 사이를 거닌 시간으로 채워진다. 여기서 나와 다시 돌아가는 길에도, 손에 쥔 시의 파편과 귓가에 남은 전자음의 잔향이 또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