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공연
정은율 개인전 Green Museum - 닦아낸 자연
- 분야
- 전시
- 기간
- 2025.11.01.~2025.11.23.
- 시간
- 11:00 ~ 21:00
- 장소
- 부산 | 부산문화재단
- 요금
- 무료
- 문의
- 딥슬립커피 0507-1303-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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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이미지를 박제하는 감각 — 정은율의 ‘그린 뮤지엄’ 연작을 둘러싼 철학적 고찰>
정은율의 ‘그린 뮤지엄’ 연작은 단순히 자연을 그린 회화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느끼게 하는 감각”만을 선별하여 박제하고, 인공적 배경 위에 고정시킨 풍경이다. 이 시리즈는 실재하는 자연을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풀과 잎, 바람, 습기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자연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감각으로 환기되고, 인공의 붉은 배경 속에서 이질적 긴장을 만든다.
이처럼 감각을 분리해 추출하고,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방식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시뮬라크르’ 개념과 깊이 닿아 있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가 더 이상 실재를 필요로 하지 않고, 실재를 흉내 낸 복제 이미지 즉, 시뮬라크르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린 뮤지엄’의 풀잎들은 실제 자연이 아니라, 자연이었던 감각의 재현이며, 실내에 걸린 액자 속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다. 마치 언젠가 실제 식물 대신 집 안에 걸어둘 ‘기념비적 자연’의 모습처럼.
정은율의 그림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판적이다. 그는 자연을 찬미하거나 치유의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화의 형식 속에서 자연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그 감각이 어떻게 상품화되고 제도화되는지를 드러낸다. 풀잎의 형상은 점차 해체되고, 화면 속 공간은 절반 이상이 버밀리온색 인공 배경으로 채워진다. 붉은 바탕은 도시, 구조물, 기계의 색이다. 그것은 자연과 인공의 명확한 분할이며, 동시에 이 회화가 “진짜 자연”을 다루지 않음을 선언하는 붉은 벽이다.
이러한 대비 속에서 관람자는 자연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역설적으로 식물이 사라질수록 감각은 더욱 도드라진다. 마치 메를로퐁티가 말한 ‘지각의 장’처럼, 감각은 형상 그 자체가 아니라 형상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더 깊이 인식된다. 자연을 그리지 않고도 자연을 경험하게 만드는 이 회화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장치다.
정은율은 그린 뮤지엄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진짜 자연인가, 아니면 ‘자연의 느낌’이라는 이미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