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문화예술공연

경기창작캠퍼스 프로젝트 레지던시 기획전시 《우리가 서로 사랑한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해요》

경기창작캠퍼스 프로젝트 레지던시 기획전시 《우리가 서로 사랑한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해요》

분야
전시
기간
2026.10.02.~2026.11.29.
시간
목~일요일 10~18시
장소
경기 | 경기창작센터
요금
무료
문의
+82 (0)32-890-4826, jiyeonkim@ggcf.or.kr
관련 누리집
바로가기

전시소개

필리아(philia)에 관하여


이상민 (경기문화재단 학예연구사)


이번 전시는 세상의 끝을 상상하는 데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 남는 것은 거대한 약속이나 완전한 기억이라기보다, 오히려 너무 사소해서 미처 이름 붙이지 못했던 관계의 흔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곁에 머물렀던 시간, 자신과 무관한 일을 함께 걱정했던 마음, 한때 서로의 삶이 조금씩 겹쳐 있었다는 사실 같은 것들.

오래전 사람들은 그런 관계를 필리아라고 불렀다. 필리아는 에로스나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기보다, 서로의 삶을 조금씩 나누어 살아가는 동안 어느 순간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감정에 가깝다.


우리는 사랑의 이유를 묻는 일에 익숙하다. 언제부터였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왜 하필 그 사람이었는지를 묻고, 하나의 관계를 시작과 원인, 결과를 가진 사건처럼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삶 속에 들어가고, 또 그 안에 오래 남는 방식은 그렇게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곁에 머문 것인지, 곁에 오래 머물다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게 된 것인지, 어쩌면 그게 사랑이었는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없다.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아도 서로가 기억하는 장면은 다르고, 어떤 관계는 지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기도 한다.서로의 곁에 남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기보다, 어쩌면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남겨둔 채 서로의 삶에 조금씩 관여하는 것에 가깝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그의 말을 오래 기억하고,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일에 마음을 쓰고, 때로는 자신이 결코 보지 못할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를 남기는 일. 그 행위들은 대부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지만, 돌이켜보면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은 언제나 그런 사소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필리아는 증명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삶을 함께 살아내는 하나의 형식에 가깝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기억하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물며,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일에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는 것. 그런 관계에 언제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를 묻기보다, 그저 서로의 삶에 조금씩 관여하며 살아왔다는 사실만이 남는다.


사랑의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잘못 말하게 될 테니까.


세상이 멸망하고, 우리가 한때 삶이라고 믿었던 대부분의 것들이 더 이상 같은 이름과 형태로 남아 있지 않게 된 뒤에도, 인간이 여전히 자기 바깥의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자신에게만 속하지 않는 시간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삶은 그곳에서도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끝내 인간으로 남게 하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사실보다, 그렇게 서로의 삶 안에 조금씩 머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세상의 멸망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도시와 도로가 사라지고, 우리가 살았던 집과 기억하던 풍경이 더 이상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한 시대를 이루었던 수많은 말과 이미지와 기록마저 서로 다른 시간의 파편으로 흩어진 뒤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지금의 시간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훗날 무엇이 남을지를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지금 무엇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누구의 삶에 머물고 있으며 또 누구를 우리의 삶 안에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뒤늦게 바라보게 된다.



세상이 멸망하고 난 뒤에도 인간의 삶이 계속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당 공연·전시 프로그램은 주최자·공연자 등의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문화포털 문화포털

1688-2220

전체댓글 (0) 별점 평가 및 댓글 달기를 하시려면 들어가기(로그인) 해 주세요.

0/1000자

  • 비방 · 욕설, 음란한 표현, 상업적인 광고, 동일한 내용 반복 게시, 특정인의 개인정보 유출 등의 내용은 게시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삭제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및 자료 등에 대한 문의는 각 담당 부서에 문의하시거나 국민신문고를 통하여 질의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