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공연

유현희 개인전 《겹빛 위에 새긴 계절선》
- 분야
- 전시
- 기간
- 2025.10.04.~2025.11.29.
- 시간
- 08:30 ~ 17:30
- 장소
- 제주 | 제주문화예술재단
- 요금
- 무료
- 문의
- 박상국 070-4400-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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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지난겨울부터 초가을까지, 한 그루의 녹나무를 오래도록 관찰했다. 겨울눈이 부풀고, 새순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일련의 과정은 계절의 흐름 속에서 반복되었고, 그 변화는 때로는 놓치고, 그러기에 기다리게도 하고, 다시 되짚게도 했다. 그러한 시간은 선과 점의 밀도로 축적되어, 작업 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제주의 식생 가운데 녹나무는 사계의 리듬을 유기적으로 품고 있으며, 일상 속에서도 그 변화가 또렷이 감지된다. 공간의 살결을 따라 식물이 파고들고, 식물의 결을 따라 공간이 숨 쉬듯 어우러지는 장면 속에서, 앞마당의 한 그루는 생장과 절단, 손상과 회복, 지속과 공존이라는 이질적인 시간의 층위를 몸 안에 함께 품고 있다.
《겹빛 위에 새긴 계절선》은 그 나무를 겨울부터 가을까지 기록하고 응시한 시간에서 출발한다. 잎맥의 주맥과 측맥, 고리와 세맥을 따라 구조를 추적하는 행위는, 식물의 시간을 따라가는 시선이자 감각의 결을 엮는 일이었다. 계절의 변화와 빛의 각도가 반복적으로 개입한 결과, 화면 위에는 단일한 패턴이 아닌 시간의 퇴적이자 지각을 밀고 들어오는 계절의 흔적들로 이루어진 복합적 서사가 형성되었다. 작품들은 단순한 도상의 재현을 넘어서, 세밀한 관찰과 감각의 밀도를 통해 하나의 시각적 문장으로 나아간다.
계절의 결이 포개진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생장의 결을 품은 내부를 거니는 듯한 감각이 펼쳐진다. 선과 색, 빛과 결이 수평으로 눕고, 그 사이를 천천히 걷는 몸은 어느새 계절의 숨결을 따라 흐른다. 창 너머,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월과 십일월의 시간은 앞마당의 녹나무에 고요히 걸쳐 있으며, 그 존재는 하나의 문장처럼 열린 채, 제삼자의 망막 위에 머문다.
한 그루의 나무를 둘러싼 집요한 관찰과 기록의 축적은 자연의 시간성과 인간의 감각이 교차하는 접면을 드러낸다. 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단지 외형을 응시하는 행위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 기억과 감각을 함께 읽어내는 시적 행위이자, 감각의 문법을 다시 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