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국립박물관의 입장
게시일
2007.05.09.
조회수
3651
담당부서
국립중앙박물관(02- 2077-9378+)
담당자
김상태
붙임파일
4월 24일자 조선일보의“석가탑 중수기 판독문에 백지 두 쪽, 중앙박물관 판독 정확성 여부 논란”제하의 보도에 대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1. 묵서지편은 비단에 쌓인 채로 불국사 석가탑의 사리기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묵서지편에는 여러 종류의 문서가 포함되어 있는데 중수기는 그 중 하나이다. 중수기는 원래 한 장의 큰 종이에 기록한 것으로, 좁은 사리공 안에 넣기 위해서는 작게 접을 수밖에 없다. 중수기를 탑에 넣은 것이 1024년이므로 1966년에 발견되기까지 거의 1천년이 흘렀으며, 그 사이 접은 문서의 가장자리가 모두 부식되고 뭉쳐버렸다.

2. 국립중앙박물관은 1997년 묵서지편의 보관상태 개선을 위해 낱장으로 분리하는 응급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분리된 순서와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낱장이 분리되는 순서대로 일련번호를 부여하였다. 왜냐하면 분리된 묵서지편이 발견 당시의 상태로 복원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알려진 묵서지편 낱장의 번호는 이렇게 부여된 관리용 번호이므로 문서 내용상의 순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3. 중수기의 정식 명칭은 ‘무구정광탑중수기’로 현재 묵서지편 내의 관리번호 상으로는 47~78번에 해당한다. 이것은 한 장의 전체 문서가 모두 32면으로 접혀졌음을 뜻한다. 이 문서를 접었던 방법, 혹은 분리된 각 낱장의 내용상의 정확한 위치는 문서의 내용을 파악해야 알 수 있는데, 우리관은 중수기를 판독하는 과정에서 중수기 내에서 각 낱장의 본래 위치를 정확하게 복원하였다. 복원된 순서대로 각 지편을 원래의 위치에 배치한 결과 조선일보에서 문제로 제기한 70, 71번 지편은 실제로 중수기 문서의 가장 끝부분에 해당하였으나, 다만 한 장의 종이로 된 중수기를 접는 방법 상 끝부분(70, 71번)이 안쪽으로 접혀 들어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

4. 우리관은 묵서지편의 접는 방법을 복원하고 그 내용의 1차 판독을 완료한 상황에서, 외부 전문가들을 포함한 조사연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현재 조사연구위원회를 통해 문서의 해제와 연구를 면밀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빠르면 금년 내에 그 연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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