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공연
그림자 사냥꾼
- 분야
- 전시
- 기간
- 2026.01.27.~2026.02.28.
- 시간
- -
- 장소
- 서울시 | 호리아트스페이스
- 요금
- 무료
- 문의
- 02-511-5482
- 관련 누리집
- 바로가기
전시소개
Hunting the unseen - Shadow Hunter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실재라고 믿는다. 손끝에 닿는 촉감만으로도 그 대상이 무엇이며 어떠한 형상인지 직감한다. 존재의 좌표를 확인하는 순간 나의 현존을 확신한다. 그러나 세계는 유기주에게서 일순간 그 명징함을 빼앗았다. 감각이 무디어져 손에 잡히는 것이 온전히 느껴지지 않는 ‘감각의 진공 상태’. 이번 개인전 《Hunting the unseen - Shadow Hunter》은 무너진 좌표 위에서 작가가 필사적으로 뒤쫓은 ‘존재 확인’의 기록이자 보이지 않는 본질을 환기하려는 고독하고 치열한 추적의 서사다.
그는 세밀한 묘사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손의 통제력에 매달리는 대신 들숨 날숨에 흐트러지는 움직임을 택했다. 흑연 가루를 물에 풀어 입김으로 형태를 잡고 양손으로 종이를 흔든다. 미처 녹아들지 못한 가루들이 덩어리를 이루며 여러 갈래의 물줄기로 흩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얼핏 순간의 변화로 매체의 우연성에 의존하는 태도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정교하고 치밀한 통제 의지가 서려 있다. 작가는 숨결이 닿는 속도와 종이를 기울이는 각도를 조율하며, 신체의 한계를 냉소하듯 자신만의 완벽한 조형 언어를 구축해 나간다. 유기주는 스스로를 “종이와 혼연일체가 되어 부드러운 왈츠를 추거나 격렬한 탱고를 추는 무용수”로 명명했는데, 결국 그는 우연과 통제가 교차하는 순간에 현존을 증명한다. 수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며 끝내 살아남은 흑연의 흔적들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우연마저 길들이려 했던 한 사람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것이 종이이든 도자기 작업이든 심지어 설치 작업이든 유기주의 공간은 날렵한 맹수가 표적을 향해 질주하는 사냥터인 동시에, 매체(종이, 흑연 가루, 플라스틱 장난감 등과 같은)와 긴밀한 호흡을 맞추는 치열한 수행의 장(場)이다.
치밀한 ‘사냥’이 2차원의 평면 공간을 너머 다양한 매체들과 더불어 무한대로 확장되는 지점은 1층 전시장의 설치작업에서 극대화된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소하고 하찮은 물건들을 전시장에 날 것 그대로 배치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낮아진 조명은 물체들만 집요하게 응시한다. 작은 물체들이 긴 그림자를 던지는 순간, 일상의 파편들은 거대한 관람차와 롤러코스터로 가득한 환상의 ‘놀이동산’으로 변모한다. 이는 지각의 유연함이 부리는 마법으로 대상의 위계는 전복된다. 유기주는 물체 그 자체보다 그로부터 파생된 ‘그림자’에 집중하며 고정된 실체를 보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시선을 뒤흔든다. 우리가 믿어온 확고한 시각의 경계가 무너지는 그 틈에서, 관람자는 비로소 ‘심연’의 상태에 따라 형상을 빚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된다. 작가가 명명한 ‘놀이동산’, ‘심판, ‘노송’, ‘불의 춤’은 모호한 심연 속에서 끌어 올린 최소한의 안도감이자, 내일의 내가 또 다른 이름을 부여할 수 있도록 열어둔 유연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방랑자’(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처럼, 유기주는 지금 안개가 자욱하고 지척도 분간할 수 없는 세상의 끝에 서 있다. 그가 작업실에서 흑연 가루를 불어넣고 일상의 물건들 사이에 조명을 밝히는 시간은, 거대한 심연을 정복하려는 사냥꾼의 시간이자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침잠하는 고독한 관찰자의 시간이다. 결국 이번 전시는 포착된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극복하고 나아가려는 의지가 충돌하는 현장이다. 작가가 쫓는 그림자는 잡을 수 없는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한계 지점일지 모른다. 관람자는 흑연의 흔적과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간에서, 작가가 숨겨둔 가쁜 숨결과 끝내 외면하려 했던 진실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