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했던 외국인 부부의 생애_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게시일
2019.01.24.
조회수
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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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소통팀(044-203-2050)
담당자
이성은

한국을 사랑했던 외국인 부부의 생애

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 포스터 

[▲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 포스터 ⓒ서울역사박물관]


앨버트 테일러가 촬영한 딜쿠샤 사진

[▲ 앨버트 테일러가 촬영한 딜쿠샤 사진 ⓒ유소린]


2005년, 한 미국인 노인이 한국인 교수에게 의뢰를 했다.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한국의 집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단서는 일제강점기에 쓰였던 지명뿐이었다.


2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의뢰를 받은 김익상 교수는 의뢰인 브루스 티켈 테일러가 유년기를 보낸 집을 찾아낸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붉은 벽돌집. 오랫동안 목적도 주인도 밝혀지지 않았던 이 집은 일제강점기 동안 외국인 부부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와 메리 린리 테일러 부부가 살았던 ‘딜쿠샤’라는 가옥이었다.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 전시가 진행 중인 서울역사박물관  

[▲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가 진행 중인 서울역사박물관 ⓒ유소린]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 기획전시실 입구

[▲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기획전시실 입구 ⓒ유소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2018년 11월부터 열린 기증유물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는 딜쿠샤의 주인이었던 테일러 일가의 삶을 담은 전시다. 이번 특별전에 전시된 물품은 모두 앨버트와 메리 테일러 부부의 손녀인 제니퍼 린리 테일러가 기증한 테일러 일가의 유물들이다. 이 유품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1900년대 초・중반 한국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


“러크나우에 갔을 때 나는 말을 타고서 폐허가 된 그 궁전을 찾아갔고, ‘딜쿠샤’가 힌디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언젠가 내게도 집이 생긴다면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이겠다고 마음먹었다.”

- 메리 린리 테일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 中



메리 린리 테일러가 작성한 딜쿠샤 내부사진 설명서 

[▲ 메리 린리 테일러가 작성한 딜쿠샤 내부사진 설명서 ⓒ유소린]


1923년 착공해 이듬해부터 테일러 부부가 살기 시작한 이 가옥의 이름은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메리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집을 완공하고 ‘딜쿠샤’라는 이름을 새겨 넣던 순간이 그녀가 인도 러크나우에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본 이후로 줄곧 꿈꿔왔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메리가 수기로 작성한 딜쿠샤 내부사진 설명서에서 그녀가 얼마나 딜쿠샤에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딜쿠샤의 은제품들 

[▲ 딜쿠샤의 은제품들 ⓒ유소린]


딜쿠샤의 한국적인 장식품들

[▲ 딜쿠샤의 한국적인 장식품들 ⓒ유소린]


메리는 딜쿠샤의 심장부가 2층에 있는 응접실이라고 회상했다. 테일러 부부가 한국에 살면서 골동품점이나 한국 곳곳을 다니며 수집해온 물건들이 전시된 일종의 박물관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딜쿠샤에 있었던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됐는데, 특이하게도 서양풍의 은제품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다양한 장식품들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호박목걸이 

[▲ 호박목걸이 ⓒ유소린]


메리 테일러의 호박목걸이 또한 전시됐다. 자서전의 제목을 <호박목걸이>로 할 만큼 호박목걸이는 어린 시절부터 메리에게 가장 의미있는 물건이었고, 남편 앨버트와의 만남의 고리가 되는 물건이기도 했다.



메리 린리 테일러가 그린 한국인들의 초상화 

[▲ 메리 린리 테일러가 그린 한국인들의 초상화 ⓒ유소린]


이밖에도 그림에 조예가 깊었던 메리가 그린 한국인의 초상화와 한국의 풍경화 등도 선보인다.


일본에게 박해받던 한국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다



앨버트 테일러가 작성한 제암리 학살사건, 3・1 운동 관련 기사들 

[▲ 앨버트 테일러가 작성한 제암리 학살사건, 3・1 운동 관련 기사들 ⓒ유소린]


“브루스는 학살 행위가 있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것을 확인하고 취재하러 수원과 전주 두 도시를 다녀왔노라고 말했다. 낮에 영국 영사와 미국 영사를 대동하고 내려가 마을 전체가 불타버린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모두 불러모아 교회 안에 가두고 창문을 통해 총을 쏘아 사살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 메리 린리 테일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 中


앨버트 테일러가 일제강점기에 그저 한국을 거쳐 간 외국인 중 하나였다면 그의 유물들이 주목받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금광과 상회를 운영하던 사업가이기도 했지만, 유피(UP)와 에이피(AP) 통신의 임시특파원이기도 했다. 그는 1919년 한국의 독립운동인 3・1운동의 재판과정을 취재했고,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해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앨버트 테일러가 촬영한 고종 장례 사진 

[▲ 앨버트 테일러가 촬영한 고종 장례 사진 ⓒ유소린]


이밖에도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고종 황제의 운구 행렬도 촬영하는 등 한국 근대사에 유의미한 사진들을 많이 남겼다.



미군 특수부대 통역사에 지원하는 편지 

[▲ 미군 특수부대 통역사에 지원하는 편지 ⓒ유소린]


1942년, 테일러 부부는 일제에 의해 한국에서 추방당했다. 앨버트 테일러는 한국 해방 이후 미군 통역사 등 다양한 자리에 자신의 한국어 능력을 알리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한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평소 앨버트가 반어법으로 농담처럼 하던, “메리가 납으로 된 작은 상자에 나를 담아 데려다줄 때까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요.” 라는 말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메리는 그의 뜻에 따라 한국으로 입국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그를 묻었다.



<호박목걸이 /> 원고 스크립트 

[▲ <호박목걸이> 원고 스크립트 ⓒ유소린]


올해는 2019년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 일제에 대항해 자주독립을 외쳤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번 전시에서 마주한 테일러 부부의 유물 속에는 우리 민족이 지키려 노력했던 가치와 치열하고 힘겨웠던 저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딜쿠샤 가옥은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아 복원 공사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복원 이후에 딜쿠샤는 테일러 일가의 유물을 전시해 일반인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전시를 조금 더 풍부하게 감상하고 싶다면, 메리 린리 테일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를 미리 읽고 가길 권한다. 전시에 미처 다 담기지 않은 테일러 부부의 삶을 더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전시개요>

○ 전시명: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 전시기간: 2018. 11. 23. ~ 2019. 3. 10.

○ 전시장소: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 관람시간: 오전 9:00 ~ 오후 6:00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료: 무료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3기 유소린기자 o_o1402@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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