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정의는 누구에 의해 정의 되는가” 국립극단 <준대로 받은대로>
게시일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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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나를 위한 정의는 누구에 의해 정의 되는가” 국립극단 <준대로 받은대로>

 

나를 위한 정의는 누구에 의해 정의 되는가 준대로 받은대로 

[ⓒ김정서]

 

영미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일찍이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많은 사랑을 받은 까닭에서일까, 대중들에게 그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를 ‘영미문학의 거장’의 자리까지 앉힌 그의 장기는 정치적 역학관계가 빚어내는 부조리에 대한 고발에 있다. 이는 비단 그의 대표작들뿐만이 아닌 그의 모든 작품이 전념하고 있는 주제의식이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었던 2016년 한 해 동안 국립극단은 2편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에 올렸는데, <겨울이야기>, <실수연발>이 이에 해당한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영미작가의 인지도가 낮은 작품들을 선정한 것은, 쉽게 간과되어 온 그의 연극세계를 구현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 포스터 

[▲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 포스터 ⓒ국립극단]

 

국립극단이 쌓아올린 셰익스피어 연극세계는 올해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2017년의 대미를 장식할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을 바탕으로 한 <준대로 받은대로>를 선택한 것이다. 12월 8일에 시작한 공연은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진행된다.

 

나의 정의를 그대에게 맡기노니,

 

자신을 향한 시선들에 불안을 느끼는 공작 

[▲ 자신을 향한 시선들에 불안을 느끼는 공작 ⓒ국립극단]

 

자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공작은 불현듯 번민에 휩싸인다. ‘정의’로운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갈망, 부족하고 연약한 자신을 남들에게 들켜버렸다는 자책, 더불어 자신의 통치능력에 대해 의문마저 품게 된 그는 여행을 핑계삼아 잠시 권력을 내려놓고자 한다. 이 막간 사이에 투철한 준법정신으로 알려진 앤젤로가 공작의 대리로 지명된다.

 

권력의 허물을 벗는 공작 

[▲ 권력의 허물을 벗는 공작 ⓒ국립극단]

 

공식적으로 ‘부재’의 상태가 된 공작은 타국이 아닌 자국의 수도원을 찾는다. 공작은 모든 종류의 권력을 소유한 권력 피라미드의 최상위층이기에, 역설적으로 권력의 부당함도 권력의 역기능도 겪어보지 못했다. 이를 자성하던 그는 신부로 둔갑하여 민간에게 적용되는 권력의 실체를 직접 목도하고자 한 것이다.

 

정욕을 탐하는 사람들 

[▲ 정욕을 탐하는 사람들 ⓒ국립극단]

 

허물 벗은 인간의 내피엔 욕망만이 남기 마련이다. 겉치레 없는 욕망을 묘사하는 헐벗은 마네킹을 부둥켜안은 사람들은 공공연히 혹은 암암리에 정욕을 탐한다. 공작의 권력은 그 사각지대를 지나쳤으나 새로운 권력자 앤젤로는 법의 이름을 들어 그들을 심판하려 든다.

 

모두의 정의는 나에게 맡기어라.

 

앤젤로의 자비를 구하는 이사벨라 

[▲ 앤젤로의 자비를 구하는 이사벨라 ⓒ국립극단]

 

법을 맹신하는 앤젤로는 사람들에게 금욕적인 수준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민다. 성적으로 정숙하지 못하다 판단한 이들에겐 사형이 선고되는데, 클로디오는 예비 신부를 임신시킨 죄로 하루아침에 사형수가 된다. 클로디오의 누이 이사벨라는 처벌의 부당함을 들어 자비를 읍소한다.

 

이사벨라에게 정욕을 표출하는 앤젤로 

[▲ 이사벨라에게 정욕을 표출하는 앤젤로 ⓒ국립극단]

 

앤젤로는 정결한 여인 이사벨라에게서, 법에 대한 사명감보다 앞서는 강한 욕정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는 그녀에게 자신과 밤을 함께 하면 클로디오를 살려주겠다 제안하고, 수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사벨라는 이를 거부한다. 공작에게서 ‘정의’가 될 권력을 양도받은 그는, 법을 완벽히 수행해 스스로 ‘정의’가 되고자 했던 그는, 정욕에 빠진 이들을 심판해왔던 그는 이제 정욕에 덜미 잡힌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사벨라에게 앤젤로의 거래 수락을 종용하는 클로디오 

[▲ 이사벨라에게 앤젤로의 거래 수락을 종용하는 클로디오 ⓒ국립극단]

 

모든 걸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려던 클로디오는 이사벨라에게서 앤젤로가 제안한 거래에 대해 듣게 된다. 살고자하는 욕망을 버리고 차라리 숭고해지고자 다짐하던 찰나에 들은 생존의 가능성에, 클로디오는 이사벨라에게 거래를 수락할 것을 종용한다. 도덕적 기준과 신앙적 기준을 들어 정절을 지키려하는 이사벨라에게, 클로디오는 정절이 생명을 앞설 수 없다고 반발한다.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의 이중 원형무대 

[▲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의 이중 원형무대 ⓒ국립극단]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숙어 ‘기울어진 운동장’에 본 따 만들어졌다는 <준대로 받은대로> 무대는 작은 원과 큰 원으로 2분할돼 기울어진 형상을 띄고 있다. 큰 원이 작은 원을 감싸고 있는 이번 무대는, 기울어진 모양뿐만 아니라 작은 원이 큰 원에 둘러싸인 구조마저도 사회에 산재하는 권력 차를 상기시킨다.

기실, 모두를 위한 정의는 존재하기 힘들다. 이사벨라에게 오빠의 목숨보다 제 신념이 중요했듯, 클로디오에게 동생의 처녀성보다 제 생존이 중요했듯, 개인의 사정과 이익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모두를 위한 정의를 존중할 수 있는 대리인을 세우고, 그에게 ‘나를 위한 정의’에 대한 많은 권한을 준다. 여기서 ‘권력’이 탄생한다. 그러나 권력을 이양 받은 이조차도 사실은 하나의 개인에 불과하다. 그런 하나의 개인이 ‘나를 위한 정의’를 정의하는 것이 타당할까.

2017년은 권력의 사권화와 이에 대한 심판 그리고 그에 대한 전복까지 이뤄졌던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권력의 성립과 이용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형성되고 있는 지금, 이러한 고민이 우리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닌 16세기에서부터였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16세기의 셰익스피어 그리고 여기에 덧대어진 21세기 국립극단의 권력과 정의에 대한 고찰이 구현된 2시간,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다.

 

 

국립극단 <준대로 받은대로>

장소: 명동예술극장

기간: 2017. 12. 8.(금) - 12. 28.(목)

시간: 평일 저녁 7:30 / 주말 및 공휴일(12.25) 오후 3:00 *화요일 휴무 (인터미션 없이 120분)

관람등급: 17세 이상 관람

가격: R석 5만 원 / S석 3만 5천 원 / A석 2만 원

문의: 1644-2003

 

김정서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talephile@naver.com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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