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에서 건져 올린 ‘젊은’ 감독들] 열등감이 빚은 비극 <숲> 엄태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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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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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만난 '젊은' 감독들, 네번째 - 열등감이 빚은 비극 <숲> 엄태화 감독

 

구정과 태식은 친구다. 항상 소심하고 겁 많은 구정에 비해 태식은 남자답고 대범하다. 숲에서 실제 자살 장면을 연출하는 페이크 다큐를 찍기로 한 두 사람. 왠지 촬영은 잘 풀리지 않고, 자칫하면 태식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엄태화 감독의 영화 '숲'의 한 장면

 

엄태화 감독의 <숲>은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비경쟁 부문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에 초청되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수작이다. 제11회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3년 만에 대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구정과 태식 사이의 긴장관계를 보여주는 어두운 숲과 구정-에스더-태식의 미묘한 삼각관계를 보여주는 찬란한 과수원 장면이 절묘하게 전환되고, 보는 이는 과거와 현재인지 꿈과 현실인지 모를 이야기에 시나브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구정의 콤플렉스가 전면적으로 극을 끌고 가지만, 장르가 호러판타지로 분류될 정도로 시종일관 영화에 흐르는 긴장감과 공포감은 오롯이 연출의 탁월함에서 오는 것이다. 30분간 관객을 사로잡고 여운을 남기는 단편영화를 연출해낸 엄태화 감독을 만나 영화 <숲>을 이야기했다.

 

 

<숲>은 ‘꿈’에 대한 이야기

 

Q 처음에 <숲>을 어떻게 구상했나?

지금 다니고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 후 제일 먼저 10분짜리 단편을 만들고 여름에 찍을 30분짜리를 기획한 것이 <숲>이다. 영화에 숲과 현실 두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엔 숲 장면만 두고 이야기를 썼다. 자살하는 장면을 찍다가 사고가 난다는 데서 출발해 만약 숲에서 친구 둘이서만 촬영하다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얘기만으로는 엔딩이 잘 풀리지 않았다. 계속 이상한 것만 나와서 이건 아닌 것 같아 고민하다가 ‘꿈’을 떠올렸다. 예전부터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거든. 그럼 숲에서의 상황이 꿈이고, 따로 현실이 있어 그 현실이 꿈으로 발현되었다면? 주인공 태식과 구정의 관계는 처음부터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걸 현실로 가져왔다. 어떻게 보면 반대로 작업한 셈이다. 꿈의 스토리가 먼저 있는 상태에서 현실이 어떤 식으로 주인공한테 영향을 줬기에 주인공이 이런 꿈을 꿨을까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풀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 주인공 에스더도 생겼다.

 

Q 미대를 다녔다고 들었다. 영화를 시작한 계기는?

원래 광고디자인을 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2학년 때 휴학하고 <몽정기> 영화 제작팀에서 일하게 됐다. 그 전에 CF 연출팀도 했었는데 영상 쪽이 내 적성에 잘 맞더라. 그래서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상 작업을 시작했다. 졸업하고 나서는 박찬욱 감독의 <쓰리, 몬스터>, <친절한 금자씨>의 연출부에서 일했고, 그 인연으로 <쓰리, 몬스터> 조감독이었던 정식 감독 형제의 입봉작 <기담>에서도 일했다. 그렇게 졸업하고 영화 작업하다가 내 영화 만들다가, 또 영화 한 편 하고 내 영화 만들고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재작년에 <유숙자>를 연출했는데 그걸 포트폴리오로 내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엄태화 감독 인터뷰 -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꾸며내는 걸 좋아했다. 미대를 다니다 뒤늦게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영화와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Q 영화의 어떤 점에 끌리던가?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을 잘했다.(웃음) 이야기 지어내는 걸 좋아했다. 예를 들면 만화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가 한창 나올 때 아직 후편이 안 나왔는데 친구들한테 봤다고 다음 내용을 지어내서 뻥치곤 했다. (웃음) 아주 어릴 때도 학예회 때 콩트 만드는 것도 좋아했고. 그러다 우연히 처음 영화 미술팀 하면서 영화 작업을 접하고 영화가 내가 어릴 때 좋아하고 재밌어 했던 것들과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사실 대학 들어와서야 깨달았으니 많이 늦었다. 난 영화도 많이 안 본 상태였다. 씨네키드 같은 사람들도 있는데. 박찬욱 감독 밑에서 일하며 엄청 자극받았고 그때 영화도 막 찾아봤다. 사실 재미가 아니라 의무감에 본 것도 많다. (웃음)

 

Q 대상을 받은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도 공포판타지 분야인 ‘절대악몽’에 출품했고, 아예 공포판타지를 다루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꿈, 짝사랑, 질투 같은 것들이 그렇게 특이한 소재는 아닌데 온전히 연출로 긴장감과 공포감을 주는 게 인상 깊다. 장르적인 면을 염두에 두고 촬영한 것인가?

예전부터 내 영화들의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웠다. 코미디 같기도 하고, 공포 같기도 하고. <숲>도 사실 멜로드라마 부문으로 내려다 주변에서 만류해서 바꾼 것이다. (웃음) 장르를 미리 생각하면서 만들진 않는다. 배운 게 나오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도 정식 감독도 콘티의 치밀함과 완성도를 중요시하는 감독이다. 그게 자연스럽게 체득돼서 긴장감이 유발되는 것 같다. 일부러 관객을 긴장시키기 위해 의도하는 건 아닌데 배운 게 그래서 (웃음) 그렇게 된다.

 

영화 '숲' 촬영장면

 

 

하나의 ‘이미지’에서 시작한 이야기

 

Q 콤플렉스를 한 번이라도 느껴봤던 사람은 누구든지 공감할 법한 영화다. 열등감 때문에 괜히 확대해석하게 되는 상황 같은 게. <숲>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미술을 해서 그런지 이야기를 만들 때 주제나 의미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부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찾아내 보려고 하는 타입이다. 뭐가 있긴 있겠지.(웃음) 사실 시나리오 쓸 때 기획의도, 연출의도 같은 글 쓰는 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가끔 영화제에서 평론가들이 쓴 평을 보고 ‘이거 좋다!’ 하고 나중에 어디 가면 이대로 얘기해야지 하기도 한다.(웃음) 그건 내가 좀 더 공부해야 하는 지점이겠지. 영화를 한다는 게 꿈꾸는 거랑 비슷한 것 같다. 꿈꾸는 동안엔 꿈인 줄 모르잖나. 나는 꿈꾼 후에 항상 메모한다. 왜 이런 꿈을 꿨을까. 그러면 하나씩 내가 어제 본 게 나왔구나, 자고 있을 때 어떤 소리가 들려서 그랬구나 하고 맞춰진다. 영화도 보는 동안엔 생각하지 않고 나중에 이런 영화구나 하지 않나. 나는 이야기를 쓸 때도 만들고 나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 같다.

 

Q 세 명의 주연 배우들 연기가 굉장히 탄탄하다. 특히 태식 역 배우가 선이 굵고 연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친동생이라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동생도 연기를 예전부터 했는데 나와 동생이 영화를 시작한 게 거의 같은 시기였다. 동생이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었기 때문에 둘이 미리 영화 하자고 얘기한 것도 없었는데,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영화 하려고 마음먹은 시기에 동생이 건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동생과 함께 작업하면 좋은 점이 많다. 리딩 할 때에도 배우 한명 한명을 다 신경 써야 하지만 동생과는 같은 방을 쓰기 때문에 밤에 시나리오 보면서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치고 저 부분은 저렇게 가자’ 얘기하면 거의 완성 된다. 그러니까 리딩하거나 현장 디렉팅 할 때 동생 말고 다른 배우들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동생이니까 어려운 일도 주문한다. <유숙자> 주인공이 노숙자인데 머리를 삭발하는 장면이 있다. 그거 때문에 원래 예정됐던 배우가 어렵겠다고 출연을 고사해 동생한테 “그냥 네가 해” 했다. (웃음) 그런데 아무래도 동생과 작업하면 배우가 힘들어할 때 영화감독으로서 냉정하게 하지 못하고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어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작고 장점이 훨씬 많은 것 같다.

 

Q <숲>에서 태식이 구정에게 페이크 다큐를 제안하면서 “이 바닥 한방이야, 영화제에서 사고 한번 치고 나만의 시나리오만 있으면 돼.”라고 말한다. 평소 생각이 반영된 것인가?(웃음)

맞다. 그런데 구정이 대사처럼 그게 말처럼 쉽진 않더라. (웃음) 그런 생각을 한창 했을 때는 2005, 6년쯤이었다. 그때는 단편영화를 잘 만들면 상업영화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이미 그렇게 해서 실패한 분들도 많고 제작사나 투자사도 단편과 장편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대사는 현실적인 상황을 모르는 태식의 허세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엄태화 감독의 영화 '숲'의 한 장면

 

Q 그래도 <숲>으로 상도 탔으니 사고 친 셈 아닌가?(웃음) 이번 영화로 주목받겠다고 예상했나?

글쎄 뭐…. (웃음) 사실 이제 그런 것에 있어 거의 해탈했다. 그냥 되면 좋고 안 되어도 이젠 뭐,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지 꽤 됐고. 영화제에 작품 내기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Q 영화 속에서 공간이 중요하다. 현실의 과수원과 구정의 꿈인 숲은 철저히 대비되는 공간이다.

숲을 먼저 있은 후에 현실이 도출됐기 때문에 현실의 공간을 설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숲과 반대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채도가 높고 밝은, 오히려 현실이 꿈처럼 보일만한 곳을 찾았다. 원래 사과 과수원을 생각했는데 촬영 시기가 사과가 열리는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자두로 바꿨다. (웃음) 김천에 있는 자두 밭에서 촬영했는데, 자두가 3~4일이면 빨갛게 다 익어 바로바로 따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 빨간 게 하나도 없고 다 초록색이었다. 그래서 바닥에 떨어진 초록색 자두들을 주워 빨간 칠 하고 나무에 다시 달아야 했다. 촬영 다 끝내고 돌아갈 때 되어서야 자두가 빨갛게 익더라. (웃음)

 

 

나는 계속 ‘영화’를 하고 싶은 감독

 

Q 피판의 묘미는 GV다. 관객들이 어떤 것을 궁금해하던가?

끝에 태식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자두 씨를 뱉는 부분에 상징이나 의미가 있냐는 질문이 있었다. 없다고 했다.(웃음) 아까 말했듯이 주제나 의미를 미리 생각하지 않고 이미지와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자두 씨를 뱉는 건, 그냥 생각났다. 현실 과수원에서 태식과 에스더가 자두 씨 뱉으면서 노는 걸 구정이가 봤고 꿈에서도 태식이 자두를 먹으니까. 그래서 마지막에 태식이 구정과 눈이 마주쳤을 때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같은 분위기를 유도하려고 씨를 툭 뱉고 뒤로 넘어가는 게 떠올랐다.

 

Q 믿음 테스트처럼 세 명이 계속 뒤로 넘어가는 장난치는 것도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인가?

그건 동기가 아이디어를 준 것이다. 그런 장난이 있다고. 그것도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치인데 의미를 찾자면 태식이나 에스더는 뒤로 넘어가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는데 구정은 되게 무서워한다. 보이지 않는 어떤 곳으로 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캐릭터를 표현했다. 구정의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엄태화 감독의 영화 '숲'의 한 장면

 

Q 엔딩에서 MOT의 ‘날개’가 흘러나온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다가 마지막에 그 노래가 나와서 여운을 더했다. 삽입곡 중 유일하게 가사가 있는데 엔딩곡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평소 좋아하던 노래였다. 대학교 다닐 때 아는 사람이 추천해준 노래인데 “이 노래 들으면 자살할지도 몰라”하고 들려줬다.(웃음) 그렇다고 굳이 자살과 매칭한 건 아니고, 가사의 의미보다는 노래 자체가 주는 정서가 차가우면서 우울한 분위기니까 영화와 어울릴 것 같았다.

 

Q 차기작 시나리오 작업하는 중이다. 어떤 영화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처음 연출하는 장편영화다. 실제 한 인터넷 사이트의 격투기 갤러리에서 ‘잉투기(잉여 격투기)’라는 대회를 열었었다. 키보드 워리어들한테 모니터 뒤에 숨어서 싸우지 말고 링 위에서 정정당당하게 몸으로 부딪혀 싸워보자는 대회다. 실제 있었던 그 대회를 바탕으로 해서 현피* 당한 주인공이 잉투기에 참가하게 되는 이야기다. 제목도 <잉투기>다.

* 현피: '현실'의 앞 글자인 '현'과 PK(Player Kill)의 앞글자인 'P'의 합성어로 게임, 메신져 등과 같이 웹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로 살인,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신조어. (출처: 네이버 오픈사전)

 

Q 단편과 장편은 작업할 때 아무래도 방식과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나?

아무래도 나는 최종적으로 상업영화를 하려고 해서 그런지, 단편영화는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데 관객과의 소통에 신경 쓰게 된다. 장편은 더할 것이고. 그래도 이번 장편은 만약 내가 메인스트림에 진출해서 하게 될 영화랑은 확실히 다르다. 그래서 만들고 싶은 대로 주물럭거리는 중이다. 아무래도 관객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순 없지만 너무 그러다 상투적이게 되어버릴까 봐 조심스럽고 고민하고 있다.

 

Q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예전에 어떤 영화제에서 감명 깊었던 장면이 있다. 그때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을 만든 일본의 스즈키 세이준 감독이 왔었다. 그분이 거의 아흔 세인데 관객과의 대화를 하기 위해 산소 호흡기를 달고 휠체어를 탄 채로 올라왔다. 거기서 관객이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만드는 노하우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세이준 감독이 경쟁자한테는 가르쳐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하더라. 그게 되게 인상적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냥 그런 감독이 되고 싶다. 나이가 많고 병이 들어도 계속 영화를 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유은수 대학생기자 한양대학교 철학과 jyjk23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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