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 만나다] 금속 활자의 명맥을 계승한 국내 유일의 활판 공방 장인을 만나다
게시일
2012.07.10.
조회수
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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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담당관(02-3704-9044)
담당자
이유진

대한민국 문화의 뿌리, 장인을 만나다 - 금속 활자의 명맥을 계승한 국내 유일의 활판공방 활판 장인을 만나다


“우리나라는 금속활자의 종주국입니다. 1377년에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서양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 발명됐어요. 그러나 요즘은 오프셋 인쇄에 밀려 활판의 명맥만 이어오고 있습니다.”

 

 


활판: 활자로 짜 맞춘 인쇄판 또는 그것으로 찍은 인쇄물


1980~90년대 중후반 컴퓨터 조판, 오프셋 인쇄*(오프셋 인쇄: 인쇄판 면에서 잉크 화상을 고무 블랭킷에 전사하여 종이에 인쇄하는 방법으로 평판인쇄의 일종이며,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인쇄방법), 디지털 기술에 밀려 사라졌던 활판인쇄가 20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바로 국내 유일의 활판공방입니다. 지난 2007년 11월 파주 출판단지에 개관된 활판공방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종주국으로서의 자긍심을 살려, 사라져가는 금속활자의 하나인 납 활자 인쇄 출판문화를 부활해 보고자 설립됐습니다. 2018년까지 현대시인 100명의 시집 100권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활판공방에서는 철커덕, 철커덕 소리와 함께 활판인쇄의 장인들이 땀을 흘려가며 인쇄 작업에 한창이었습니다.


활판 공방 장인


공방 안으로 들어가니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목재 선반에 자족별로 촘촘하게 박힌 은색 납 활자들이 반기고, 그 뒤로 낯선 기계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반질반질한 자모 저장대 옆에서 주조공 정흥택 선생님이 문선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활자 선반과 활판 인쇄기에서는 윤활유와 잉크 냄새가 나고 있었는데요. 마치 1960~70년대 조판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했습니다.


활판 공방 자모 저장대

 

 


타임머신을 타고 활판인쇄의 제작과정을 살펴보다


납 활자 인쇄는 원고의 글자 하나하나를 찾아내고 조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 글자도 대충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들이는 시간도 상당합니다. 그럼에도 공방에서는 장인들이 고유의 활자 인쇄를 고집하시고 계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제작과정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장인들의 숨결이 들어간 활판 인쇄 제작과정을 보러 가보겠습니다.


활판인쇄의 공정은 자모* 만들기, 납 활자 주조하기, 문선하기, 식자하기, 교정하기, 인쇄하기, 지형 만들기, 제본하기 등으로 총 8단계를 거칩니다.  

 

 


 

 

1 자모 만들기: 자모(字母)는 활자의 엄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체 디자인의 시초인 ‘원도’를 올려놓으면 자동 조각기가 이 모양대로 파낸 자모를 만듭니다. 자모는 한번 만들면 계속 사용이 가능합니다. 현재 공방에는 크기별, 글자별, 모양별로 약 5만여 개의 자모가 보관돼있습니다.

자모는 활자의 모양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편집주간 박건한 시인은 “이 원판이 없어지거나 한다면 더 이상 글자는 만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국에 있는 글자를 다 모았지요.”


2 납 활자 주조하기: 자모는 수많은 활자를 만드는 바탕이었습니다. 활자 주조기에 자모를 넣고 납을 녹이면 같은 글자의 납 활자가 주르르 나옵니다. 이 납 활자를 활자 선반에 체계적으로 분류해(자주 사용하는 것은 가까운 곳, 희귀한 글자들은 구석, 글자 크기와 모양에 따라) 보관합니다. 납 활자에는 특이한 홈이 있는데요, 홈이 있는 쪽이 글자의 위쪽이라는 뜻입니다. 자동주조기는 글씨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1분에 30자~150자까지 뽑아냅니다.


3 문선(文選)*하기: 활판공방의 활자 선반에는 한글이 2200자, 한자는 1만 5000자 정도가 있습니다. 그 많은 글자들 속에서 원고에 필요한 내용대로 활자를 일일이 뽑아내는 작업입니다.

문선: 만들어진 글자와 문장을 맞추는 작업


4 식자(植字)하기: 문선공이 골라 뽑은 활자로 원고대로 판을 짜는 조판 작업입니다. 다양한 공목과 약물을 사용해 순서, 행수, 행간, 자간, 위치 등을 일일이 조정해야 합니다.


5 교정하기: 조판한 한 쪽을 ‘스틱’이라고 한다. 이를 흐트러지지 않게 실로 꽁꽁 묶으면 ‘교정쇄’가 됩니다. 여기에 잉크를 묻혀 수동 활자 인쇄기를 돌려 오식이 있는지 살피는 과정입니다. 정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핀셋으로 활자를 교체합니다.


6 인쇄하기: 활자 인쇄기에 4쪽을 한 번에 인쇄한다. 커다란 한지로 인쇄하기 때문에 4쪽을 인쇄한 후 한지를 접습니다. 접는 이유는 활판인쇄는 잉크를 분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며들게 하는 방식이므로 뒷장에까지 잉크가 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7 지형 만들기: 공간과 비용적 한계로 조판을 모두 보관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재판을 위해 원판 위에 지형을 올리고 고온에서 찍는데요. 이 지형에 다시 납을 부으면 인쇄판이 생깁니다. 이 지형만 보관해도 30쇄까지 재판할 수 있다. 30쇄까지 재판한 후에는 다시 고온에 녹여서 활자로 재활용 할 수 있습니다.


8 제본하기: 활판공방에서는 접지와 제본도 일일이 손으로 합니다. 손으로 해서 접을 때 삐뚤빼뚤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요.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수십 년 경력의 장인이 접는 것인가 봅니다.

 

 


 



긴 과정을 통해 책이 완성됩니다. 이렇듯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활판인쇄의 장점은 2mm정도 돌출된 활자를 놓고 먹물이 스며들게 압을 가하는 것이어서 문신한 것과 똑같아 변하지 않고 오래간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오프셋(현대인쇄)인쇄는 잉크를 입히기 때문에 색도 금방 변색되고, 바래집니다. 무엇보다 활판인쇄로 제작된 책들은 책으로서의 존재감이 뚜렷합니다. 김찬중(인쇄장)씨는 “이곳 책들은 전주 한지로 인쇄하기 때문에 몇 백 년을 가도 그대로”라며 “한지에 스며드는 잉크와 표면의 도드라지는 촉감은 컴퓨터 인쇄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라고 활판 인쇄의 우수성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활판인쇄로 제작된 책들


책이 완성이 됐어도 아직 1%가 부족했는데요. 그 1%를 박건한 시인은 ‘활판공방’ 책에 숨어있는 특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육사, 최남선 시인 들이 과거에 썼던 친필 글을 직접 복사해 책의 매 표지에 넣은 것입니다. 또한 살아계신 분들의 시집은 저자가 한 부 한 부에 친필 글씨와 인지를 새겼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책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


각 기술들을 배우는 데는 3년 정도가 걸렸지만, 완전한 숙련공이 되기까지는 그 몇 배의 세월이 걸렸다고 장인들은 말합니다. 정흥택 주조공은 “박한수 대표가 구식 활판 인쇄를 되살리겠다며 기술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어요. 지금은 활판인쇄 우리가 아니면 하지도 못해요. 이게 사람 손이 계속 들어가는데 오프셋인쇄보다 몇 배는 느린데 누가 이런 걸 요즘 하려고 하겠어요? 그래도 컴퓨터로 찍은 책보다 활판인쇄가 의미 있고, 사람이 만든 것 같으니까 하지.”

 

활판 공방 장인


문단에 데뷔한지 40여년 된 시인이기도 한 박건한 활판공방 편집주간 역시 끊어진 활판인쇄의 맥을 이어야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둥지를 틀었습니다. 활판공방 박한수 대표와 그는 사라져가는 활판인쇄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며 고철로 팔려나가던 식자기와 주조기 등을 사 모으고 뿔뿔이 흩어진 활판인쇄 장인들도 끌어 모았습니다.


편집주간인 박건한 시인은 “오프셋 인쇄는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과 같고 활판인쇄는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과 같아 그 향기와 느낌이 천년이 간다”며 “먹물이 한지에 스며들어 눈이 덜 피로하고 그 고급스러움을 따라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활판과 오프셋인쇄를 가마솥 밥과 전기밥솥, 정겨운 자갈길과 아스팔트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


“가장 중요한 것은 활자에서 나오는 느낌입니다. 그렇기에 시 전집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오래 보관해야 할 것들, 가치 있는 책들을 연속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의 흔적을 박물관의 밀랍인형과 교과서에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마르크스 사상 전집 같은 중요한 책은 활자로 찍는 걸 선호합니다. 금세 잉크가 날아가는 요즘 책과 달리 생명력이 길기 때문이지요. 잘 만져보면 종이가 부드럽지 않고 오돌토돌 합니다. 잉크가 압력을 받아 종이 위에 꾹꾹 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같이 함께 일하시는 장인들이 일을 더 이상 못하시게 되면 인쇄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 일을 하겠습니까. 수익을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기계가 있어도 다룰 줄을 모르고, 젊은 사람들은 안하려고 하기 때문에 활판인쇄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이 시설들과 기술자 분들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줬으면 해요.”  


“활판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저 쪽에 있는 기계는 최남선 시인이 사용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유산들이 버려지고, 관심에서 사라졌습니다. 1883년 한성순보부터 1983년까지 100년 넘게 모든 인쇄물은 납 활자 인쇄였습니다. 이런 한국의 문화의 일부였던 것을 국가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하지 않고 개인이 하다보면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가 금속활자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있는데 조금 힘들더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으면 해야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계자가 있으면 좋겠고, 돌아서서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꿈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활판공방 전수자를 양성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합니다. 장인들은 “나도 이젠 70을 넘겼고 활판공방에서 일하는 장인들도 6~70대여서 앞으로 3~4년이면 손을 놓게 되니 뒤를 이을 전수자 양성이 필요해요.” 박건한 시인은 “발전하려면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과거가 있어야 현재, 미래도 있는 것이지요.” “가마솥 밥에는 어머니의 손맛이 담겨져 있습니다.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밥을 지을 때 마다 밥맛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매력이고, 활판인쇄도 이와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활판 공방


오늘도 활판공방은 장인들의 땀방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옛 활판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방인 활판공방. 100권의 시선집이 완성되기 전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철커덕, 철커덕 하는 소리는 계속 들릴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임현채 대학생기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littleprinc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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