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변천사 선수의 새로운 도약
게시일
201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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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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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토리노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변천사선수의 새로운도약

 


2006년 제20회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을 딴 선수. 바로 변천사 선수입니다. 현역 때 좋은 성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쇼트트랙 선수였죠. 하지만 이제는 은퇴를 한 후 새로운 꿈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는 변천사 선수! 그녀의 다사다난한 인생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습니다.



7살의 변천사, 스케이트를 시작하다


Q. 스케이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놀이공원을 갔는데 사람들이 얼음 위왔다 갔다 하니깐 너무 신기했어요. 그래서 스케이트가 재미있어서 자주 탔는데 선생님들이 잘하니깐 선수로 나가보라고 했어요. 그 꼬임에 넘어가게 거죠 (웃음).


Q. 그 ‘꼬임’에 넘어가서 선수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네요?

제가 어릴 때 여러 가지를 했었어요. 그중에 스케이트를 제일 재미있어 했었죠. 그래서 6살에 스케이트를 시작해서 7살 때부터 “나는 선수가 돼야지”라고 이미 결정을 내렸었죠. 사람들이 그 당시 “천사는 앞으로 크면 뭐가 될 거야?” 이렇게 물어보면 항상 저는 “스케이트 선수” 라고 말했어요.



드디어 자랑스러운 국가 대표가 되다

 

변천사 선수

 

Q.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국가 대표가 된 건가요?

계속 전국대회를 나가면서 꿈을 키웠어요. 대표선발전에 나갈 수 있는 15살이라는 나이 제한이 당시 생긴 거예요. 그래서 그때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스케이트를 탔어요. 결국 2003년 4달, 고 1에 대표가 된 거죠.


Q. 그럼 처음 태극 마크를 단 그 기분은 어떤가요?

항상 전 텔레비전을 보면서 선수들이 항상 태극 마크를 달고 시상을 할 때 태극기가 내려오는 그 장면을 꿈꿔왔었어요. 나도 언젠간! 하면서요. 그런데 훈련을 시작하고 나서는 너무 힘들어서 그 감동을 매시간 느끼지는 못했어요.


Q. 하루 스케줄이 어떻게 됐었는데요?

동계종목이다 보니 여름 내내 체력 훈련을 해요. 일단 새벽 5시 15분쯤에 일어났어요. 6시부터 8시까지 스케이트를 탔죠. 아침을 먹고 10시에 또 오전 운동을 하러 나가요. 12시까지 운동을 한 후 점심을 먹고 난 후에 2시부터 4시까지 스케이트를 또 타요. 그게 끝나자마자 사이클 같은 지상훈련의 연속이죠.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웃음). 저녁을 먹고 또 8시부터 10시까지 야간 운동을 하는 거죠.


Q. 그럼 가끔 훈련 안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겠네요?

매일 해요(웃음). 월요일이 오는 게 두려워서 운 적도 있어요. 선수 생활하기 전에, 한 선수가 훈련장을 이탈한다고 하면 대표 선수가 왜 저런 걸 못 참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해보니 충분히 알겠더라고요.


Q. 그렇게 힘든 훈련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저 혼자 운동을 하면 분명히 못 버텼을 거예요. 하지만 주위에 같은 상황에 있는 동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어요. 또, 토요일 외박을 바라보면서 참았죠. 딱히 나가서 뭘 하는 것도 없는데 훈련장을 나간다는 게 좋았어요. 예를 들면 훈련하면서 ‘꼭 내가 나가서 아이스베리 빙수를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거죠(웃음). 이런 사소한 것들이 그땐 행복이었어요.


Q. 그렇게 힘든 훈련을 겪고 나서 빛을 보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메달을 땄을 때죠. 제가 1등을 하는 그 순간, 힘들었던 기억은 다 사라져요. 그 맛을 저는 알고 있거든요. 그냥 입에 걸리죠. 마치 가수들이 콘서트에 가면 엄청난 관중들이 그 가수를 위해 환호할 때의 그 느낌이랑 비슷할 거예요.


Q. 같은 또래 친구들은 화장하고 친구들과 놀러 다녔을 텐데 부럽지는 않았나요?

부럽지는 않았어요. 제겐 당연했었어요. 그들이 공부하듯이 저는 스케이트를 타니까요. 스케이트는 내가 좋아하니깐, 내 길이라고 생각을 했었죠.


Q. 그럼 보통 친구들과 다르게 연애할 시간도 없었겠네요?

다 해요(웃음). 주말에 쉬잖아요.



짜릿한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기억

 

저는 느꼈어요. 난 정말 행복한 스케이터였다는 것을요.


Q.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쇼트트랙 1,500m에서 실격을 당했었잖아요. 그때 정확한 상황이 어땠나요?

코너에서 저랑 중국의 왕멍 선수가 살짝 부딪혔죠. 결과적으로는 제가 실격이 됐지만 전 밀지 않았어요. 오히려 왕명 선수가 제 무릎을 잡아당겼어요. 그런데 항상 한국 선수들에겐 스치는 것만으로도 실격 사유가 되니깐 스치지도 말자라고 다짐을 해요. 그랬는데 부딪힌 거니깐 왕멍 선수 탓도, 심판 탓도 아닌 제 탓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이 메달 3개를 독식하는 것을 막으려고 그런 판정을 내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문제는 저로부터 발생된 거니까요.


Q. 원래 왕멍 선수랑 친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일이 있고난 후에 관계가 조금 뒤틀리지는 않았나요?

전혀 그러지 않았어요. 서로 엄청 친했어요. 서로 언어가 안 통해도 손짓, 발짓으로도 대화가 잘 통했어요. 원래 한 나라 선수가 1등을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다른 나라 선수가 손을 내미는 일은 없어요. 그런데 왕멍 선수를 포함한 중국 선수들이 그랬죠.


Q. 오노 선수와 트위터도 하던데 서로 친한가요?

친하죠. 한국과 오노 선수의 관계는 안 좋잖아요. 하지만 선수들은 오심이니깐 오노가 아닌 심판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한번은 2006년 올림픽이 끝나고 오노가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왔어요. 그때 오노와 함께 운동을 하면서 좋은 선수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오노도 미국에선 스타지만, 그때 한국에선 새벽에 제일 처음으로 운동을 나왔어요. 저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낼 정도로 좋은 선수였죠.


Q. 1,500m에서 실격을 당한 후, 왜 제일 자신 있었던 1,000m는 아예 출전을 못 했나요?

그때 파벌이 있었어요. 제가 당시 1,000m에서는 세계 랭킹이 2위였어요. 저도, 주위 사람들도 제가 당연히 탈 줄 알았는데 파벌 때문에 안타깝게도 출전을 못 했죠. 그런 소식을 모르던 기자들이 와서 저에게 1,000m에 대한 각오를 물어보기도 했었어요. 제가 못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기자들이 더 당황했었죠. 그때 한 기자가 저에게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한마디 하라고 물어봤었을 때는 펑펑 울기도 했었죠.


Q. 오히려 그런 아쉬운 일이 토리노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일조를 했나요?

그런 일이 있어서 더 열심히 하기도 했었지만, 올림픽에 나가기 직전부터 많이 힘든 일이 있었어요. 파벌 문제도 있었고, 보도된 대로 국가대표 선수들이 코치진들에게 체벌을 빙자한 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어요. 한번은 인대가 늘어난 적이 있었는데, 파벌 때문에 아무도 저에게 관심을 안 주는 거예요. 코치진이 재활을 해줘야 하는데 저를 방치하고 쉬게만 했어요. 상황이 그렇다 보니 스케이트는 점점 못하게 되서 정말 초등학생보다 실력이 안 좋았어요. 주위에 사람들은 대놓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쟤 이제 끝났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는 난 이 정도로는 안 무너진다고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나서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건거죠!



24살의 변천사, 은퇴를 결심하다

 

변천사 선수


Q. 세계선수권을 마지막으로 24살에 은퇴를 했죠. 왜 은퇴를 하셨나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에도 계속 열심히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당시 파벌 문제는 여전히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목표도 욕심도 없어지고, 슬럼프가 왔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은퇴를 하게 되었어요.


Q. 은퇴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요?

제가 힘들었을 때는 스케이트를 탄다는 게 싫었어요. 그런데 다시 점점 마음을 되찾기 시작했죠. 그리고 2010년에 저는 느꼈어요, ‘난 정말 행복한 스케이터였구나’ 당연히 저도 선수로서 아름다울 때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죠. 비록 제가 박수칠 때 떠나지는 못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스케이트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어요.


Q. 은퇴 후에는 뭘 하셨나요?

7살 때부터 배운 것은 스케이트밖에 없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스케이트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유럽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죠. 그 여행이 제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내 가슴을 설레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해봤는데, 그게 바로 스포츠 외교였어요. 제가 돌아다니는 것, 사람들 만나는 것,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Q. 은퇴 후에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고 계신가요?

KBS 1박 2일 시청자 투어랑 SBS 국민 DJ도 나가봤고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명예체육교사로도 위촉이 되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싶어요.



현재의 변천사는 어떤 꿈을 꾸고 있나



Q. 그렇다면 현재의 꿈은 뭐고, 그 꿈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IOC위원이요. 그 꿈을 위해서 국제스포츠인재양성 프로그램도 참여해서 공부도 했어요. 현재는 영어도 배우고 있고요. 이렇게 새로운 일을 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어떤 일을 좋아하니깐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니깐 잘 할 수 있게 되고, 잘 하니깐 더 좋아하게 되는, 순환의 연속인 것 같아요.


Q. 변천사 선수는 7살 때부터 계속 꿈이 있었잖아요. 스케이트 선수라는 큰 꿈을 이루고 또 새로운 꿈을 꾸고 계신데, 계속 꿈을 꾸시는 이유가 뭐죠?

제가 꿈을 꾸고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제가 살아있다고 느껴요.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설렘을 느끼니까요.


Q. 꿈을 꾸면서 실패 할 수도 있지 않나요?

꿈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실패란 없는 것 같아요. 그 노력하는 과정 중에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잖아요. 그 자체가 성공인 것 같아요.


Q. 현재 꿈이 없는 청소년들이 많은데, 그런 아이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한마디 조언을 해주세요.

제가 많은 청소년을 만나면 이렇게 물어봐요, 넌 꿈이 뭐니? 그러면 10명 중 7명은 다 모르겠다고 해요. 저는 그런 게 참 안타깝거든요. 꿈을 꾸기 때문에 노력하고 행복할 수 있는데, 꿈이 없으면 삶의 낙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항상 던졌으면 해요. “난 뭘 좋아하지?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면 자연스레 목표가 생기고 꿈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 중 무거운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특유의 친근함으로 분위기를 밝게 해준 변천사 선수. 스케이트 선수 때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면 “그 힘든 건 정말 안 겪어보면 몰라요” 하며 한숨을 먼저 내쉬지만, 아직도 누구보다 스케이트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분야에서 이미 성공했지만 그 울타리를 벗어나서 새로운 꿈을 가지고 다른 분야에 발을 내딛는 그녀의 마음가짐을 우리는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두렵다고는 하지만 그 두려움이 미래의 변천사를 만드는 초석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도, 선수였을 때도, 지금도 꿈을 꾸는, 꿈을 꿈으로써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다고 말하는 변천사 선수를 응원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이수헌 대학생기자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suheon2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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