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기 있다_국립극단 <고독한 목욕> 안정민 작가와의 대화
게시일
2019.03.20.
조회수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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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소통팀(044-203-2050)
담당자
이성은

아직 여기 있다_국립극단 <고독한 목욕> 안정민 작가와의 대화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박예림]


우리는 슬퍼할 권리가 있다. 누구나 상실의 고통에 마음껏 울부짖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 유가족들은 울 권리조차 빼앗겼다. 어딜 가도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담장 밖으로 우는 소리를 내서도 안 되었다. 빨갱이란 잘못된 낙인은 가슴 속에 단단한 응어리로 남겨졌다.

 

아버지(좌)와 아들(우)

[▲아버지(좌)와 아들(우) Ⓒ국립극단]


지워지지 않는 얼룩에 대하여


<인민혁명당 사건>

1974년 유신정권은 무고한 사람 8명에게 간첩 누명을 씌웠다. 희생양을 만들어 정치적 위기와 과오를 감추려 한 박정희 정권의 술책이었다.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 재판에서 고문에 대해 밝혔으나 판사나 검사의 강압적 태도로 저지되고 말았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사형을 확정했고, 다음날 새벽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을 집행했다. 이는 명백한 사법살인이었다. 그리고 2007년, 33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가 판결되었다.

 

아버지를 심문하는 아들

[▲아버지를 심문하는 아들 Ⓒ국립극단]


국립극단 <고독한 목욕>은 인민혁명당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해 진실을 폭로하기보다는, 국가 폭력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의 일상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간첩으로 끌려간 후 세상에 두려움을 느낀 아들은 욕조에 자신을 가둔다. 아들은 꿈과 환상 속에서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동시에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우고 폭력을 가한 국가의 실체는 귀신처럼 아버지와 아들을 따라다닌다.


우리에게 배달된 이야기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가의 창작활동 지원에 힘쓰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소관 공공기관인 국립극단 또한 극작가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차세대 극작가를 소개하는 젊은극작가전, 온라인 상시투고 제도인 희곡우체통이 바로 그것이다. 세 번째 젊은극작가전이자 희곡우체통 첫 정식 공연인 <고독한 목욕>은 3월 8일부터 24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진행된다.

기자는 희곡우체통에 참여한 소감과 작품에 대한 생각을 듣고자 안정민 극작가를 만나보았다.

 

Q. <고독한 목욕>은 국립극단에서 진행하는 희곡우체통의 첫 정식 공연이에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전에는 어려운 작업 환경에서 일했어요.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몰랐고요. 극작가는 연출을 만나야 비로소 발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인지도 낮은 작가가 뛰어난 연출을 만나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희곡우체통을 통해 훌륭한 연출과 좋은 환경 속에서 작업하게 되어 기뻐요.


Q. <고독한 목욕>은 낭독회를 통해 공연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작가, 관객, 전문가가 모여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 과정은 어땠나요?


A. 작가로서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관객이 제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직접 알 수 있었어요. 또 좋은 의견도 들을 수 있었고요. 그런 의견들을 이번 무대에 잘 적용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어요. 조금 아쉽지만, 다음 작품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Q. 극은 1975년에 일어난 인민혁명당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국가가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했고, 끝내 8명을 사형시켰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A. 피해 유족분들의 생각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공연 허락을 구하고자 편지를 썼어요. 세상에 공개되지 않을 편지지만, 작품을 쓰는 것만큼 힘들었어요. 작업 과정에서는 실제와 상상 사이에서 충돌이 있었어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계속 고민했고요. 이 부분은 모든 예술가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이라고 생각해요.


Q. 피해 유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관객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극의 발화자가 피해 유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했다. 피해자 프레임이 재생산될까 우려된다.” 이 말에 굉장히 동의해요. 그렇지만 제 희곡이 100퍼센트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피해자로서의 피해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규정하는 틀에 갇혀 있지 않은 피해자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왜 피해자는 늘 구체적이어야 하고, 상처받아야 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모습이어야 할까요. 모든 역사는 피해와 가해를 지정하는 데서 나오죠. 저는 이걸 거꾸로 뒤집는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만난 아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만난 아들 Ⓒ국립극단]


Q. 극이 진행되는 동안 실제 피해 유족들의 아픔을 목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만큼 몰입돼서 몸과 마음이 무겁고 저릿했어요. 작품을 쓰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A. 고문 장면을 쓸 때는 늘 밤이더라고요. 시간을 조절해서 아침에 쓰려고 해도 잘 안 됐어요. 결국 무서울 때는 강아지에게 안기곤 했어요. 만약 강아지가 없었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작가들이 개나 고양이를 많이 키우지 않나 싶어요.


Q. 이번 작품은 ‘기억’이라는 단어로도 표현될 것 같습니다. 극 중 아들은 고문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환상에 시달리면서도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아요. <고독한 목욕>은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


A. 한 인간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빨갱이라고 부르지 말아야지.’ 이런 식의 교훈이 아니라요. ‘어쩌면 내 옆집에 사는 사람이 밤마다 욕실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이런 상상이 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와 아들의 뒷모습

[▲아버지와 아들의 뒷모습 Ⓒ국립극단]


Q. 작가님은 연출가,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A. 글쎄요. 세상이 시키는 거 해야죠.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나쁜 뜻이 아니라.(웃음)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은 세상이 알려주지 않을까요. 떠밀려 사는 게 잘사는 방법 같아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에서


<고독한 목욕> 무대 뒤편 벽에 적힌 시다.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문을 열고 무대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아들은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 어린아이 모습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동시에 우리는 욕조 안에서 두려움과 죄책감을 씻어내려는, 하지만 맨발로 뛰어다니며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을 목격한다. 결국 아들이 느끼는 모든 고통의 감각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국립극단 <고독한 목욕>

기간| 3. 8. ~ 24.

시간| 평일 저녁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 (화요일 휴무)

장소|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연출| 서지혜

출연| 김동순 남동진 방승민 유성진 이종무 임준식 정새별 홍아론 박예찬

소요시간| 약 80분

관람등급| 14세 이상(중학생 이상)

문의| 1644-2003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4기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4기 yeye_em@naver.com 강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박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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