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의 뿌리를 알다! <대한민국 빙상계의 아버지, 김정연>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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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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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의 뿌리를 알다! <대한민국 빙상계의 아버지, 김정연> 특별전

 

동계올림픽의 뿌리를 알다! 대한민국 빙상계의 아버지, 김정연 특별전 

[ⓒ 김성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거머쥔 김기훈부터 김동성, 진선유, 이상화 그리고 김연아까지.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이 얼마 남은 가운데 국가대표 선수들은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며 이들을 이을 차세대 금빛주자를 꿈꾸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첫 동계올림픽에 나섰던 우리나라는 1992년 이후 7대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강국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쇼트트랙 강국으로 입지를 다진 대한민국은 최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에도 두각을 나타내며 선전 중이다. 그러나 그만한 꽃을 피우기까지는 그만큼 뿌리가 깊고 튼튼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마침 다가오는 평창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맞이 동계올림픽의 뿌리를 알 수 있는 특별전이 서울올림픽기념관에서 진행 중이다. 1936년 일제강점기 시절 동계올림픽에 출전 동양인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고 김정연 선생(1910~1992)의 특별전인 <대한민국 빙상계의 아버지, 김정연(이하 김정연 특별전)>이다.

 

국립체육박물관 첫 특별전의 주인공 ‘대한민국 빙상계의 아버지’

 

전시가 열리는 서울올림픽기념관 

[전시가 열리는 서울올림픽기념관 ⓒ 김성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는 2020년 개관을 목표로 국립체육박물관을 건립 중에 있다. 이를 위해 체육박물관추진단에선 체육사의 중요인물과 유물연구에 매진 중이며 국민들로 하여금 체육유물 기증 캠페인을 벌이는 데 한창이다.

이번 특별 기획전에서는 체육박물관추진단이 국립체육박물관 건립을 위해 그간 모아온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김정연 특별전은 추진단이 마련한 특별 기획전 중 첫 선을 보이는 전시다.

 

0에서 만들어낸 1, 기적을 일궈낸 빙상소년

 

“체육을 잘하는 조선인은 많았으나 일본에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근대화를 먼저 이룬 일본보다 기술과 장비 면에서 크게 뒤졌다. 때문에 체육계에서도 조선인들은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마라톤에서 *마봉옥 선생이 그러한 세태를 깼다면 동계종목에선 김정연 선생이 그런 선구자 역할을 했다”

 

김정연 선생의 선수시절 스케이트화 

[김정연 선생의 선수시절 스케이트화 ⓒ 김성범]

 

*마봉옥 : 대한민국 최초의 마라톤 공식기록을 가진 선수로 1927년 조선신궁체육대회에서 3시간 29분 37초로 우승했다. 당시 대회 우승은 조선인의 올림픽 출전 포문을 열었고 이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생의 우승으로 이어진다.

체육박물관추진단 관계자의 말처럼 체력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마라톤보다 장비와 기술이 요구되는 빙상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긴 어려운 일이었다. 1905년 일본인이 한국에 들어와 대동강, 압록강 유역에서 타기 시작하며 도입된 빙상은 조선인에게 있어 그림의 떡인 고급스포츠였다. 선수들 역시 일본을 따라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상황.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김정연 선생이 0에서 1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계기는 다름 아닌 울분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어찌할 수 없던 청년의 울분은 하루 5~6킬로미터씩 스케이팅에 몰두하는 연습으로 승화됐고, 이는 평양보통고등학교 재학 시절 나섰던 한강친선경기에서 선전하며 빙상인의 자격으로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유학하는 계기가 됐다.

 

전일본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김정연 선생 

[전일본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김정연 선생 ⓒ 김성범]

 

우리는 빙상의 삼용(三勇)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세 선수를 우리의 빙상경기사(史)가 있은 이래 처음으로 세계무대로 떠나보내고 있다. (중략) 이 대망의 빙상올림픽 뉴스를 더욱더 세밀히 보도하기 위하여 특히 김정연 군에게 이 통신을 의뢰하였다. 일심정력(一心精力) 제패(制覇)의 염(念)에 매진하고 있을 김정연군에게 매우 어려운 위촉이나 이 또한 선수 자신이 아니고서는 형용할 수 없는 기행문이며 분투기까지 아우를것이기에 지금부터 더욱 기다려진다. <1935.12.31 ! 1936.1.12 동아일보 연재시리즈 중> 

[대회 출전 당시 신문기사 ⓒ 김성범]

 

“힘껏, 맘껏, 가슴이 아프도록 뛰었습니다. 베스트를 다하였습니다. 조금도 후회가 없습니다”

- 동아일보 1936년 3월 11일자에 실린 김정연 선생의 曰

 

이후 파란의 연속이었다. 메이지대학 1학년 시절부터 전일본대회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듬해 대회 최초로 2연패를 석권했다. 일본에서 우뚝 선 김정연 선생은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올림픽에 참가해 10,000미터에서 13위를 기록했다. 메달과는 거리가 먼 성적이었으나 18분 2초 8의 성적은 동양인 올림픽 신기록. 이 기록은 1976년 이영하 선수가 신기록을 세우기 전까지 40년 간 대한민국 최고기록으로 자리잡았다.

 

은퇴 이후 체육행정가의 길을 걷다

 

코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 인증서 

[코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 인증서 ⓒ 김성범]

 

체육행정가 이후 받은 감사패 

[체육행정가 이후 받은 감사패 ⓒ 김성범]

 

“나의 마음은 언제나 차가우면서 아름다운 빙판에 남아있습니다”

- 월간중앙 1972년 4월 김정연 선생의 기고문 ‘빙상생활 20년의 회상’ 중 일부

 

김정연 선생은 선수 은퇴 이후에 체육행정가의 길을 걸으며 체육계에 이바지했다. 1956년 코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장을 맡으며 국가대표를 이끌었고, 1963년에는 손기정 선생과 함께 남북단일팀 구성을 목적으로 남북체육회담에 참여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도 역임하며 선수 시절과 지도자 시절 가져왔던 열정을 행정 속에 녹여냈다. 기고문처럼 그는 한평생을 차가운 빙판 위에 뜨거운 가슴으로 살다 간 사람이었다.

 

우리들의 기증이 만드는 특별전, 기증품은 곧 이야기가 된다.

 

김정연 특별전에는 선수시절의 트로피와 스케이트화, 체육행정가로서의 기념패 외에도 경기 영상과 인간 김정연을 느낄 수 있는 전시품들이 즐비하다. 이는 모두 김정연 선생의 가족이 기증한 유산들로 꾸려낸 그의 이야기다. 김정연 특별전은 당초 전시 종료일이었던 12월 15일에서 기간을 연장해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내년 2월까지 관객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아울러 종료 이후엔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2차, 3차 특별전이 차례대로 진행된다.

 

김성범 가톨릭대학교/국어국문학과 zinx220@naver.com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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