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순간의 ‘우리’ _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진전 <1980년대의 표정>
게시일
201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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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순간의 ‘우리’ _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진전 <1980년대의 표정>

 

그 때, 그 순간의 ‘우리’ _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진전 <1980년대의 표정> 

ⓒ윤지연

 

우리에게 가까운 ‘역사’는 어디서부터 떠올려볼 수 있을까? 1980년대는 여러 세대에 걸쳐 기억과 역사의 과도기에 있던 특별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어났던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와 사건들은 오늘날까지 흘러들어 다양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때 그 순간의 ‘우리’를 담은 ‘1980년대의 표정’ 사진전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부출입구에서 열린다.

 

<1980년대의 표정> 전시장 

▲<1980년대의 표정> 전시장 ⓒ윤지연

 

전시는 ‘새집짓기’,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 ‘꿈틀꿈틀 성장의 힘’ 그리고 ‘환호의 순간들’까지 총 네 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각 주제가 담긴 30여 장의 사진을 통해 그 시간들 속에 살아 숨쉬는 사건, 풍경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보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우리 집, 달동네

 

첫 번째 작품은 1980년대 대규모 개발 직전에 포착된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의 모습을 담았다.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혈혈단신으로 올라와 굳은 일만 떠맡던 이들은 도시의 빈곤층을 형성하게 고 고된 노동을 끝낸 몸을 뉠 수 있는 공간은 산비탈의 작은 판잣집뿐이었다.

 

서울 종로구 행촌동  

▲서울 종로구 행촌동 ⓒ김기찬

 

작은 판잣집들이 모여 만들어진 산비탈의 달동네. 차갑고 시리던 도시 생활 속, 사람들은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이 달동네는 1980년대의 대규모 개발 이후 차례차례 자취를 감춘다. 방과 후 집에 돌아가기 위해 힘겹게 언덕을 오르던 아이의 뒤로 ‘달이 보이던 동네’의 마지막 모습이 보인다.

 

따스한 봄은 차가운 겨울 뒤에 찾아온다.

 

1980년 5월, 서울역 앞에는 시위를 주도하는 대학생들과 일부 시민들을 포함해 10만 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집결한 이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계엄령 해제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다. 자유를 옥죄는 억압과 무차별적인 폭력까지, 시린 겨울이나 다름없던 그 시대에 따스한 봄과 같았던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이 시위를 ‘서울의 봄’이라고 부른다.

 

서울역 시위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는 청년 

▲서울역 시위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는 청년 ⓒ경향신문

 

위의 작품에서는 부상당한 동료의 팔을 붙들고 부축하는 청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카메라를 또렷하게 응시하는 이 청년의 두 눈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는 듯하다. 원망과 절망, 그 속에 묻어나는 희망에 대한 믿음까지.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겨울을 이겨내는 그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더 높이, 가장 높이!

 

세 번째 작품은 여의도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63층 높이의 건물, (주)한화63시티의 건설 당시 모습이다. 1980년 2월에 착공해 1985년 5월에 완공된 이 건물은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한 번 더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던, 난생 처음 만난 높고도 높은 건물, 모두가 힘을 합쳐 올린 경제성장의 결과물이자 호황의 상징이었다.

 

완공을 앞둔 63빌딩의 건설모습 

▲완공을 앞둔 63빌딩의 건설모습 ⓒ경향신문

 

63빌딩은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문화 복합공간으로 기능하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느 주말, 63빌딩을 방문한다면 이 작품을 떠올려보자. 이제는 완전한 모습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63빌딩과 어느새 그 주위를 에워싼 높고 커다란 건물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과 역사의 흐름을 실감나게 할 것이다.

 

육상 3관왕, ‘라면소녀’의 해프닝

 

마지막 작품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의 육상부문에서 800미터, 1500미터, 3000미터의 3관왕을 거머쥔 임춘애 선수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당시 임춘애 선수는 “라면만 먹고 자랐다.”, “우유 먹는 친구들이 부러웠다.”라는 말로, 가난한 환경에서 끝없는 노력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둔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가 됐다.

 

서울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 

▲서울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 ⓒ경향신문

 

이는 한 언론사의 오보로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그 오보를 맹신하며 임춘애 선수에게 ‘라면 소녀’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이뤄낸 임춘애 선수의 성공신화. 결국 모든 것은 거짓이었지만 이 감동적인 소식은 당대 많은 사람들에게 실낱같은 희망과 지지 않는 믿음을 선물했다. 그녀의 노력과 빛나는 수상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어떤 가슴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우리, 함께, 지금, 여기서

 

1980년대는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힘이 돋보였던 시대였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었던 눈부신 발전, 그 영광은 지금까지 많은 영역에서 디딤돌이자 동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두운 역사의 아픔도 자리한다. 그리고 1980년대의 사람들은 ‘함께’ 모여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민주화의 봄을 이룩했다. 이처럼 많은 것이 사라지고 변화한 격동의 시대, 1980년대를 발전시키고 버텨나갔던 그 때 그 순간의 ‘우리’는 이 전시를 찾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 기 간 : 2017. 10. 17. [화] ~ 2018. 2. 28. [수]

● 장 소 : 1층 부출입구 전시공간

● 관 람 료 : 무료

●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 수요일 및 토요일 저녁 9시까지 야간개관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 관람문의 : 02-3703-9200

 

대학생기자단 윤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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