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원 만화의 짱을 그리다! 만화 <짱> 임재원 작가
게시일
20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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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한국 학원 만화의 '짱'을 그리다 만화 <짱> 임재원 작가


‘짱’ 이란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짱은 원래 청소년들 사이에서 싸움을 잘 하는 친구들을 부정적으로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최고다’ ‘굉장하다’ 란 뜻으로 몸짱, 얼짱, 짱이야 등등 짱을 엮은 친근한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짱’ 이란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이 만화의 영향력 때문이지 않을까요? 1996년부터 연재를 시작하여 16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만화 <짱>. 짱은 화려한 액션 장면들과 함께 국내 학원계의 다양한 상황들을 말해주었으며 국내 만화계에 ‘짱류 만화’라는 새로운 갈래를 만들기도 하였는데요. <짱>의 임재원 작가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16살이 된 만화 <짱>

 

16살이 된 만화 '짱'


<짱>이 올해 16살이 되었습니다. 국내 만화 중 10년 넘게 연재하는 작품을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의미가 대단한데요. 장수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작품이든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10회안에 작품의 성공여부가 결정 되요. 10회 정도 연재하였을 때 인기여부에 따라 연재가 결정되죠. 인기가 없으면 출판사에서 작품을 접자란 이야기를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엔 그런 이야기가 없어서는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웃음) 사실 처음 연재할 때 ‘100권까지 해보자!’ 란 꿈이 있었어요. 그 꿈을 따라서 정신없이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100권은 쉽지가 않더라고요. 지금 <짱> 66권 단행본을 준비 중인데 계속 생각하는 것이 “과연 100권은……. 힘든 일인 것 같다.”에요.


<짱>은 다른 학원만화에 비해 작가님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강한 것 같아요. 예전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왕따 문제나 학원 입시 등 많은 사회문제들이 <짱>에서 다루어지는데요. 작가님이 <짱>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떤 것인가요?

글쎄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것은 다소 없어요. 단순히 재밌게 그리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죠. 수많은 메시지들은 제 만화를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 찾아내는 것 같아요. 저는 단순히 재밌게 그리려는 의도거든요.(웃음)  영화를 보면 감독들은 직접적으로 영화 속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영화에 대해서 평을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반면에 <짱>에 대해 학원폭력을 조장한다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아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런 만화를 그리고 있냐.” “너무 폭력을 우상적으로 그리지 않냐.” 등등. 많은 이야기를 듣다가 최근엔 좀 줄어들었어요. 왜냐하면 <짱>이 소위 말하는 현재 ‘일진문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단순히 아이들이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어떻게 노는지를 넘어서 요즘 친구들의 생각지도 못한 폭력성들을 따라가지 못하죠. 따라가면 안 되고요. 그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이 드는 것은 제 만화를 봤으면 좋겠어요. 제 만화를 본 독자들이라면 알겠지만 제 만화 속 ‘현상태’라는 인물은 단순한 깡패가 아니에요. 자신이 가진 힘을 이롭게 사용할 줄 아는 영웅이에요. 함부로 주먹을 사용하지도 않고요. 일진이라 불리는 친구들이 현상태를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현상태와 더불어 만화 속 친구들. 어른들의 말 엄청 잘 듣습니다.(웃음)


<짱>과 관련된 많은 루머들이 있어요. ‘인천연합이 실제로 존재한다.’ ‘박건하란 인물이 실제로 인천에서 한 주먹 하더라.’ 등등 . 사실인가요?

학생들 6~7명 정도 모여서 찍은 단체사진과 함께 ‘인천연합. 실제로 존재한다!’ 란 제목의 글을 예전에 한 번 봤어요. 그걸 보곤 깜짝 놀랐는데, 제 만화 속 인물과 설정들은 100% 설정이에요. 


그럼 앞으로 현상태가 나아가는 길에 대해 간단히 들을 수 있을까요?

현상태가 나아가는 길은 현재 이야기상으로 엄청난 강적이 나오고, 인천의 학원들의 평화와 질서를 어지럽혀요. 현상태는 그 강적을 처단하겠죠. 그건 정해진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이상하겠죠? 그 과정을 어떻게 감동적으로 그려낼까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제 나이가 40대를 지나가고 있는데, 40대를 넘어가니까 30대때 나오던 열정과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짱>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어요. 저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노력중이고요.

 

만화 '짱' 임재원 작가 스케치북




만화가 좋아서 선택한 길, 만화가


만화가가 된 계기는 어떻게 되세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 좋으니까 만화가가 되야지!란 생각뿐이었어요. 그 생각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었고요. 제 위로 10살씩 터울의 형과 누나들이 계신데 그분들에게 어릴 때 이야기 들어보면 손에 뭔가를 질 수 있을 때부터 땅에 뭔가를 낙서를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다닐 때 장래희망을 적잖아요. 다른 친구들은 대통령, 박사를 쓸 때 저는 무조건 만화가를 적었어요. 한 번도 그 희망이 변한적도 없었죠.


1989년 안춘회 선생님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하셨어요. 문하생때 이야기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가 문하생 시절을 보낼 때는 지금의 잡지체제와는 다른 대본소 체제였어요. 잡지체제는 한 작가 밑에 문하생들이 5~6명 정도이면 대본소체제 땐 한 화실에 문하생만 20~30명 정도 됐어요. 한 작가 밑에 스토리, 데생, 터치, 배경, 뒤처리 등으로 역할이 나뉘고 각 역할별로 5~6명이 됐죠. 그땐 선후배 위계질서도 엄격했어요. 뒤처리 막내는 청소부터 담배 심부름까지 도맡아 했으니까요. 원고제작에 참여할 실력이 되지 않으니 그렇게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매일 그림 연습을 하였죠. 그러다가 선배들이 그림을 보고 ‘오! 원고에 손댈 만 하겠는데?’ 라며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면 배경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줘요. 보통 배경이 6~7장면이 있다하면 1장면 정도 그릴 수 있게 해줘요. 그때 잘하면 매번 1장면씩 꼬박꼬박 그리다가 어느새 배경으로 올라가는 거였고, 못하면 뒤통수 한 대 맞으면서 또 다시 그림연습을 하는 거였죠. 그때의 체제로 작가가 되기까지 10년 정도 걸렸죠. 당시의 목표는 작가가 빨리 되야지가 아니라 열심히 해서 배경파트로 올라가야지였어요. 당장 눈앞에 있는 일부터 열심히 해야만 원고제작에 참여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군대를 갔다 오니 국내 만화체제가 대본소에서 잡지로 넘어갔어요. 잡지만화의 그림체는 대본소 그림체보단 화실경험이 없는 신선한 그림을 원했죠. 때문에 고등학생 작가들도 많이 나왔고, 20대 초반에 만화작가가 된 친구들도 많았죠. 저도 그 흐름에 발맞춰 작가 반열에 올랐죠.


만화를 보면 작가와 담당자가 마감 때문에 투닥거리는 장면들을 종종 볼 수 있어요. 담당자와 마감 때문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있나요?

그런 적은 없었어요. 다른 작가들 만화 속에서 그런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도 그런 일이 있다고는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적은 없어요. 어차피 마감은 작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와 같이 하는 거예요. 제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출판사에 말하면 출판사는 ‘임재원 작가 사정이 이러이러 하여 마감이 힘들다’ 하면 페이지수를 줄이던지 다른 대체법으로 어떻게든 마감을 하죠. 


화실 구성은 어떠한가요?

현재 문하생들은 없고 모든 작업을 저 혼자서 진행 중이에요. 스토리 작가도 작품을 처음 연재할 당시엔 ‘손태규’ 작가님이 스토리를 써 주셨어요. 작가님이 만화에 제 이름만 올려라고 하셔선 제 이름만으로 만화가 발간됐고요. 그렇게 하다가 손태규 작가님이 일이 많아져선 더 이상 스토리를 써주실 수 없어선 김태관 작가님과 일을 하기 시작하였죠. 또 어느 순간 김태관 작가님이 하는 일이 많아져선 다시 혼자 진행했죠. 제가 스토리에 대해선 공부를 하지 않아서 혼자 진행하다가 한 번씩 막혀요. 그럴 때마다 스토리 작가 분들을 구했죠. 중간 중간에 스토리 작가가 개입된 단행본들이 있어요. 중간 중간 참여를 하다가 일이 많아져서 그만두고 혼자 하다가 다시 힘들면 구하고 반복이에요. 문하생들도 제가 힘들면 예전에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요. 예전엔 자주 도와줬는데 이제는 다들 취직해선 바빠져선 꾸역꾸역 혼자 하고 있어요. 혼자 하다보니까 시간적인 압박 때문에 예전 같은 작품 퀄리티가 나오지 않지만, 이 점은 소리 듣지 않기 위해 그저 열심히 진행 중이에요.


임재원 작가


한국 학원만화의 짱! 국내 만화계를 말하다


현재 국내 출판만화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산에서 만화 꿈나무들을 가르치는 학원 <드림시드>를 운영 중이에요. 그런 입장에서 만화가를 꿈꾸는 꿈나무들의 미래를 점쳐보자면?

간혹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학생들이 있어요. 부모님들이 물어보시는 게 “만화 그리면서 밥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라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기준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만화만 그려도 굶지는 않아요. 그 뉘앙스는 아마 일반 회사 다니는 것처럼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느냐? 란 걸 물어보는 듯해요. 평균적으로 보면 그만큼은 힘들 거예요. 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참 국내 만화시장이 호황을 누리다가 일순간에 무너졌을 때 우려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 보면 또 그렇지 않거든요. 웹툰과 게임회사 등 돌파구들도 많아져선 예전에 작가를 하셨던 분들도 다 돌파구를 찾아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어요. 만화계 자체도 시장이 좋지 않다고 하니까 그만큼 빠져나가고 도전하는 사람들도 적어졌어요. 예전에 밥그릇이 100개였다면 지금은 10개로 줄었죠. 밥그릇이 100개일 땐 200명이 몰려서 싸웠다면 지금은 10개지만 대략 12~15명 정도 남았어요. 비유가 적절한가? (웃음) 이런 것을 보면 시장이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쁜 상황은 아니죠.


제가알기론 국내 출판만화계의 시장이 좋지 않아 많은 작가들을 포함한 만화가 지망생들이 일본으로 넘어가, 그곳의 브로커를 통해 일본 잡지에서 연재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실제로 한국 출판만화계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요. 최근 열풍인 웹툰에 비해 출판만화는 데뷔하기가 힘드니까요. 일본에 비해선 시장이 줄어들었고요. 그런데 요새 출판만화로 작가로 데뷔하기엔 최적이에요. 조금만 열심히 해서 눈에 띄면 바로 데뷔할 수 있어요. 일본 진출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들은 한국에서 먼저 데뷔를 했으면 좋겠어요. 일본에 도전하는 건 좋은 자세에요. 한국의 시장이 작아져서 돌파구로 일본을 선택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은 좋죠. 하지만 첫 시작부터 일본으로 발을 돌리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데뷔를 하고 갔으면 해요. 일본은 한국보다 시장이 크기에 만만치 않아요. 현재 일본에서 연재중인 양경일 작가님과 박성우 작가님도 연재를 하기까지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들었어요. 한국에서 성공한 작가님들인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많은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한국에서 데뷔를 하여 많은 훈련을 한 뒤에 일본으로 발을 돌리기를 추천하고 싶네요.


“첫 시작부터 일본으로 발을 돌리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데뷔를 하고 갔으면 해요.”



그렇다면 예전과 비해 시장이 줄어든 국내출판만화시장이 개선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마어마하게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면 되요. 하지만 힘들죠. 그것 외에는 독자들이 끌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광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많은 분들이 국내출판만화시장이 줄어들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웹툰을 꼽는데 웹툰이 지장은 줬으나 100%라고는 할 수 없어요. 요즘은 보고 즐길게 너무 많아요. 예전엔 ‘심심한데 만화나 볼까?’ 였는데 요즘엔 ‘심심한데 만화나 볼까?’ 는 100명중에 1~2명 꼴인 것 같아요. 만화외에 오락거리가 너무 많이 나왔잖아요. 굳이 만화를 선택하지 않아도 더 재밌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그렇기에 다른 재밌는 것들을 뛰어 넘는 작품이 나와야 다시금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만화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지망생 여러분들. 현재 즐거우신가요? 당연히 즐거울 겁니다. 저도 만화를 그릴 때 가장 행복하니까요. 그 마음이 1년, 10년, 20년 계속 가시길 바랍니다. 물론 자신의 앞날에 대해 구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마시고 지금 행복감을 계속 누리셨으면 합니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나 그때의 위치, 그것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앞날 구상만 하지 말고 현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즐겁게 작업하시고 만화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셨으면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하성문 대학생기자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sniperl029@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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