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물 마음에 담다 ‘백성을 사랑한 성군 대왕세종’
게시일
2011.06.29.
조회수
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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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한국의 보물을 마음에 담다 '백성을 사랑한 성군 대왕세종' - 세종대왕 동상 이미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관하는 <2011 세계유산 연계체험 프로그램> 중 지난 18일에 있었던 프로그램은 세종대왕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이번 프로그램의 손님들은 바로 북한 새터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전통문화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들과 함께한 경북궁과 영릉 방문기! 이제 시작합니다.



경복궁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세종대왕의 업적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 봤을 경복궁.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많이 있는데요. 경복궁은 사실 북쪽 끝과 남쪽 끝의 높이차가 150cm에 이를 만큼 경사가 진 곳에 만들어진 궁궐이라고 해요.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금천교는 임금과 백성이 사는 곳을 나누기 위해, 궁궐에 들어가기 전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배산임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세자 세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곳이기도 한 경복궁 근정전

▲ 세자 세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곳이기도 한 경복궁 근정전 ⓒ 박미래


근정전 앞의 돌들은 박석이라 하여 화강암을 얇게 포를 떠서 만들어졌는데요. 원현숙 문화해설사의 “왜 울퉁불퉁하게 바닥을 만들었을까요?”라는 질문에 처음엔 어색해 하던 새터민들도 한두 명씩 답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정답은 3가지 이유에서였답니다. 첫째로는 그 당시 신하들이 돼지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을 신었는데 바닥이 매우 미끄러운 신발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그렇게 바닥을 만들었다고 하고요. 둘째로 바닥이 울퉁불퉁하면 신경 써서 걸어야 하기 때문에 임금님 앞에서 좀 더 삼가라는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햇빛을 불규칙으로 반사시켜 눈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수정전(좌)과 경회루(우)의 모습

▲수정전(좌)과 경회루(우)의 모습 ⓒ 박미래


경회루에 들리기 전 들린 곳은 수정전이었는데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만들어진 곳이지요. 과연 무엇일까요? 15세기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훈민정음이 창제된 곳이 바로 수정전이랍니다.


경복궁 관람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2시간정도 걸려 찾아간 곳은 여주에 위치한 영릉입니다. 이 영릉에는 두 임금인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이 안식을 취하고 있죠.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요. 42기 능 어느 하나도 훼손되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죠.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 원비 신의왕후의 능)과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을 제외한 나머지 40기의 능은 남한에 있습니다. 조선 왕릉이 더욱 가치가 있는 이유는 여전히 전주 이씨 후손들이 매년 왕과 왕비의 제향일에 맞춰 제사를 지내고 있기 때문이죠.


고궁을 둘러보는 관광객과 안내를 해주시는 가이드의 모습 이미지

 

세종대왕 영릉은 원래 이 곳에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1469년 예종이 서울 헌릉(태종의 능) 서쪽에 있던 세종의 능을 여주로 천장(임금의 무덤을 이장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말)시켰다고 해요. 세종대왕이 돌아가신 이후 문종, 단종, 세조에 이르기까지 임금님들의 안위가 그리 평탄치 만은 않았죠. 그리하여 세종대왕의 묏자리에 문제가 있다 하여 예종이 지관을 파견하여 좋은 묏자리를 찾도록 시켰습니다. 어느 날 지관이 묏자리를 찾던 도중 비가 많이 쏟아져 한 오두막집에서 비를 피하며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 다음날 아침 오두막집에서 나와 보니 그 자리가 바로 명당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 곳엔 신하 이인손의 묘가 이미 들어서 있었죠. 그리하여 예종은 이인손의 아들인 이극배를 불러 천장을 해야 되니 아비의 묘를 이장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문화해설사가 “좋은 말로 할 때 줄래, 한 대 맞고 줄래 식이지요?”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자 참가자들 모두 크게 웃으며 공감을 표했답니다.


계단에 오르기 전 문화해설가가 가르쳐준 방법에 따라 예를 갖추는 참가자들

▲ 계단에 오르기 전 문화해설사가 가르쳐준 방법에 따라 예를 갖추는 참가자들 ⓒ 박미래


세종대왕 영릉은 세종과 정비 소헌왕후가 함께 묻혀 있는 조선 최초의 합장릉입니다. 능 주위를 석양(해로운 것들을 쫓아내는 동물)과 석호(야생동물들을 쫓아내는 동물)들이 지키고 있고 아래에 두 명의 문신과 두 명의 무신이 함께 왕을 호위하고 있죠. 오솔길을 지나 도착한 효종대왕 영릉은 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재실이란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인데요. 대부분의 재실들이 없어지거나 많이 훼손돼 있는 것과는 반대로 효종 영릉의 재실은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랍니다.



소중한 문화유산과 함께 하는 시간


프로그램이 끝난 뒤 참가자들 모두 날씨가 엄청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밝은 표정으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쳤는데요. 참가자 이은향 씨는 “저는 세종대왕 영릉에서 효종대왕 영릉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좋았어요. 특히 영릉의 경우 평소에 와보지 못한 곳이어서 더욱 신기하고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실제 북한의 경우 고려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한 역사공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새터민들이 더욱 조선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다음엔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요.”

원현숙 문화해설사


고궁에 대한 해설을 해주시는 문화해설가의 모습

 

오늘 새터민들과 함께 한 문화체험 프로그램 어떠셨나요?

제가 이 전에도 새터민들을 여러 번 가이드해준 경험이 있는데요. 아직까지 서먹하고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오늘 같은 경우 참가자들이 먼저 와서 질문도 많이 하고 그래서 더욱 좋았던 것 같네요. 앞으로 그들에게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제공되었으면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미래 대학생 기자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mira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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