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백년의 신화전
게시일
201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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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희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 

[▲대문 사진 ⓒ김상훈]


 누구나 한 번쯤은 교과서에서 생동감 넘치는 한 마리의 <소>를 보았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듯 포효하는 소의 강렬한 모습은 누구도 쉽게 잊을 수 없다. 이중섭(1916-56)은 식민지, 전쟁, 분단 등으로 얼룩진 한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면서도 끈질기게 ‘예술가’의 삶을 고집했다.


 <황소>와 <소>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1,2위에 선정될 만큼, 이중섭은 명실상부한 ‘국민작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곳곳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 국민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그의 원작을 최대한 모아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개최했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 개막식 

[▲6월 2일 열린 개막식에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고은 시인, 유홍준 교수, 국립 현대 미술관 홍보대사 영화배우 이정재 등이 참여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배우 이정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김상훈]


 이번 전시에는 <황소>를 비롯해 <욕지도 풍경>, <길 떠나는 가족> 등 그의 대표적인 유화 60여 점 외에 드로잉, 은지화, 엽서화, 편지화, 시화, 그의 유품까지 총 200여 점의 작품과 100여 점의 자료가 총망라되었다. 전시는 이중섭의 생애를 따라 연도별로 구성 된다.

 

전시구성

[▲전시 구성 ⓒ국립현대미술관]


1. ‘일제 강점기, 일본 유학 그리고 마사코와 사랑에 빠지다.’

: 1916-1950 평원, 평양, 정주, 도쿄, 원산

 이중섭은 1916년 9월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외가가 있는 평양에서 수학했다. 이후 1930년 정주의 민족사관학교인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고, 1937 -1941년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서 수학했다. 1943년, 원산으로 귀국해 1945년 해방 직전에 후배였던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식을 올린다. 이 시기 작품들은 일본 유학기의 애인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 원산 시기 해방직후 제작된 연필화 등이 전시된다.

 

이중섭의 파레트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도 빼먹지 않고 챙긴 그의 ‘파레트’ ⓒ김상훈]


2. ‘가난하지만 가족과 함께여서 행복했던 서귀포, 그리고 이별’

: 1950-53 서귀포, 부산

 이중섭은 1950년 12월 원산 폭격을 피해 어머니를 남겨둔 채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간다. 이때 작품들을 모두 어머니 품에 남겨놓고 와, 그의 1950년 이전 작품은 극히 드물다. 그는 1951년 부산에서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다. 서귀포에서 약 1년간 가족들과 가난하지만 행복한 피란생활을 한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 생활을 이어가다 가난과 두 아이의 건강 때문에 가족들을 일본으로 돌려보낸다.

 

이중섭 작품 소와 새와 게

[▲<소와 새와 게>, 제주도에서는 게를 잡아 생활했다. 이중섭은 게를 많이 잡은 미안함에

 그림에 게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면 소와 새와 게를 찾을 수 있다.]


3. 은지화

 은지화는 이중섭이 창안한 새로운 기법의 작품이다.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새기거나 긁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른 후 닦아내면, 긁힌 부분에만 물감자국이 남게 된다. 그는 은지화에 제주도 서귀포 시절 행복했던 가족들의 모습부터 비극적인 사회  상황과 자신의 처참한 현실을 암시하는 내용까지 다양한 장면들을 새겼다.

 

이중섭 작품 -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두 아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김상훈]

 

이중섭 작품 -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 

[사진 7,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 1953-54 ⓒ김상훈]


4.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결핍’

: 1953-54 통영

 이중섭은 공예가 유강렬의 주선으로 통영 나전칠기전습소에서 강사로 재직했다. 그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때 유명한 ‘소’ 연작들이 제작되었고, 생애 최고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의 ‘소’에서 희망의 눈빛과 함께 채울 수 없는 결핍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중섭의 황소

[▲<황소>, 이중섭은 소를 정말 좋아했다. 매일같이 소를 관찰하는 바람에

소도둑으로 의심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김상훈]


5. 편지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여러 지역을 떠돌며 가족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고 다정다감한 편지를 썼다. 그러나 1955년 중반 이후 점차 절망 속으로 빠져들면서 편지를 거의 쓰지 않았고, 아내로부터 온 편지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중섭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

[▲<이중섭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 1954년경 ⓒ김상훈]


6. ‘마지막 희망 그리고 곤경의 시작’

: 1954-55 서울

 서울에 올라와 지인의 집에서 기숙하며 1955년 1월에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했다. 그 동안 일본의 아내는 일본에서 책을 사 한국에 판매하여 그 차익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을 했지만, 중간 업자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극심한 빚에 시달리게 된다. 이중섭은 빚을 갚고 일본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개인적으로 작품을 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 전시에서 작품은 약 20점이나 팔렸으나, 수금이 되지 않아 그는 곤경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중섭 작품 - 길 떠나는 가족

[▲<길 떠나는 가족>, 이중섭은 헤어져 있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자신은 황소를 끌며 따뜻한 행복이 있는 남쪽으로 함께 가는 광경을 그렸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곧 열릴 개인전이 성공하면 이내 가족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 작품은 실제로 1955년 1월 미도파화랑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 출품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7. ‘거식증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 1955 대구

 서울 전시에 이어 시인 구상의 도움으로 4월 대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지만 서울에서보다 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시인 구상의 회고에 따르면, 이중섭은 ‘가장’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 자책감에 빠져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 질환에 시달렸다. 피를 흘리며 처절한 자신의 처지를 은유한 피 흘리는 <소>가 이때 제작된 작품이다.


“나는 세상을 속였어! 예술을 한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놀고 다니며 후일 무엇이 될 것처럼”  - 시인 구상의 “이중섭의 발병전후”(1974) 중

 

시인 구상을 위해 그려준  <시인 구상의 가족>

[▲시인 구상을 위해 그려준 <시인 구상의 가족>, 그림 속 오른쪽 남자가 이중섭 자신이다.

구상의 아들을 보며 자신의 아들을 추억하는 모습이다. ⓒ국립현대미술관]

 

8.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외로운 생을 마감하다.’

: 1956 서울(정릉)

 병원을 전전하던 이중섭은 1955년 12월경부터 서울의 정릉에서 화가 한묵, 소설가 박연희, 시인 조영암 등과 함께 생활했다. 이 때 문예지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괴로움에 마신 술 때문에 생긴 간염에 그는 다시 병원생활을 했고, 1956년 9월 6일 적십자병원에서 외로운 생을 마감했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학예연구사 김인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학예연구사 김인혜 ⓒ김상훈]


 ‘이중섭, 백년의 신화’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에게 전시 설명을 해준 김인혜 학예연구사와 간단한 인터뷰를 가졌다.


Q 국립 미술관 역사상 최초로 이중섭의 개인전을 개최하셨는데요. 특별히 ‘이중섭’ 전시인 이유가 있나요?

 이중섭이 사실 우리가 국민작가라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실제로 일반인들과 연구자들이 원작을 본 적이 없고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위해 뉴욕현대미술관을 포함해서 총 60개 소장처로부터 최대한 원작을 모으는데 주력을 했습니다.


Q 특히 전시를 볼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보면 될까요?

 전시는 이중섭의 생애로 엮여있습니다. 이중섭이 체험했던 ‘세계의 변화, 시공간의 변화에 따라서 작품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따라가실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습니다. 전시를 쭉 따라가면서 ‘정직했던 한 사람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작품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생각하시면 아주 흥미로운 전시가 될 것입니다.

 

관람 중인 사람들

[▲관람 중인 사람들 ⓒ김상훈]


 이번 전시에서 단순히 ‘민족의 화가’로서 이중섭의 그림만을 보고 그치는 것은 아쉽다. 우리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이 천재 예술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되짚으며 그의 일생과 그림을 따라가길 바란다.


관람안내

이중섭, 백년의 신화 LEE JUNG SEOB 1916-1956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16년 6월3일-10월3일 

[▲포스터]


기간: 6월 3일부터 10월 3일(매주 월요일 휴관)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입장료: 성인 7,000원, 유아·초·중·고 4,000원(덕수궁입장료 포함)

관람시간: 화, 목, 금 일요일 오전 10시 - 오후 7시/ 수, 토요일 오전 10시 - 오후 9시

전시문의: 02-522-3342

홈페이지: http://www.jungseob.com/

 

문화체육관광부 김상훈 대학생기자단 경희대/언론정보학과 tkdgns953@naver.com 문체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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