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발레리노 되다 : GOP 장병들의 발레교실
게시일
20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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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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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고금희

군인, 발레리노 되다 


 12월 17일 저녁, 국립발레단의 연습실에서는 조금 특별한 수업이 있었다. 전문 발레리나, 발레리노가 아닌 군인이 발레 바(bar)를 잡고 선 것. 이는 국립발레단에서 지난 2015년 5월부터 진행한 프로젝트로,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에게 발레를 가르쳐주는 수업이다. 군인과 발레.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연습실에서 진지하게 몸을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과 함께한 특별한 발레 수업의 현장을 지금 바로 만나보자.

 

GOP 장병들의 발레교실

▲ GOP 장병들의 발레교실 Ⓒ김희원


 연습실에는 타이츠 대신, 군용 체육복을 입은 군인들이 열 맞춰 대기 중이었다. 첫인상은 경직되어 있었고, 분위기도 무거웠지만, 수업이 시작되고 연습실에 음악이 울려 퍼지자 서서히 번지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연습에 참여한 군인은 총 17명. 5월, 발레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더 많은 인원이 있었지만 8개월간 꾸준히 연습에 임한 사람으로 열일곱 명이 남았다. 방송사 카메라가 사방에 있었고, 기자들이 연습실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꽤 긴장되었을 텐데도 침착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며 한 동작, 한 동작 해 나아가는 장병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반년이 넘도록 함께한 국립발레단의 발레리노, 발레리나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지도를 시작하자 그들의 어깨에 자신감이 더 실리는 듯했다.

 

장병들을 지도하는 박상철 발레 마스터

▲ 장병들을 지도하는 박상철 발레 마스터 Ⓒ김희원


 지도교사로서 장병들에게 발레의 기초부터 고급 단계까지를 차근차근 알려준 사람은 두 명이었다. 국립발레단의 박상철 발레 마스터와 이향조 발레리나다. 발레에서 기본 동작은 남녀 무용수가 공통으로 수행하지만, 남성 발레에서는 조금 더 높은 도약이나 강한 회전력 등을 요구해 여성발레와 다른 지점이 있다. 따라서 남성 무용수는 (대체로) 부드럽고 가벼운 발레의 기본 움직임과 남성발레의 특수성을 함께 익혀야 하는데, 이를 위해 지도교사로 발레리노와 발레리나를 함께 배치한 데에서 국립발레단의 세심함이 돋보였다. 이날 수업에도 어김없이 참여해 수업을 이끈 이향조 지도교사(발레리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맨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박상철 발레 마스터와 이향조 발레리나다

▲ 맨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박상철 발레 마스터와 이향조 발레리나다 Ⓒ국립발레단


이향조 지도교사 인터뷰

 

좌측 맨 앞에 이향조 발레리나의 모습이 보인다

 ▲ 좌측 맨 앞에 이향조 발레리나의 모습이 보인다 Ⓒ국립발레단


Q1 : 처음과 지금, 달라진 점?

A1 : 수업을 받는 장병분들이 너무 밝아지셨다. 처음에는 무뚝뚝한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인사도 잘 받아주시고 웃어주시기도 한다. 밝아진 모습이 보기 좋다. 발레도 처음에는 어려워하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과가 드러나서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움직임보다는 정적인) 공부를 주로 하시던 분들이라 자세가 좋지 않았는데 스트레칭을 도와드리고, 자세를 바로잡아 드리면서 그러한 부분에서의 발전도 모색했다.


Q2 : 앞으로 기대하는 성과?

A2 : 처음에는 이분들이 과연 발레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시간이 갈수록 실력이 느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기대도 커지고, 공연을 올리고 싶은 욕심도 난다. 장병분들이 부대에서 발레 수업을 하면서 조금 더 기분 좋게 군 생활을 하셨으면 좋겠다.


Q3 : 발레 문화에서 기대되는 점?

A3 : 문화 혜택을 잘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많다. 외진 곳에 있는 학교라든지, 장애가 있는 분들이라든지. 국립 단체로서 문화 소외계층에게 춤을 전파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사업이 많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수업에 함께한 강수진 발레리나

 ▲ 수업에 함께한 강수진 발레리나 Ⓒ김희원


 수업 진행 중간, 연습실의 공기가 확 달라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강수진 단장의 등장 때문이었다. 연말 레퍼토리 <호두까기 인형>의 리허설 지도를 마치고 GOP 장병들의 발레교실을 함께 하러 온 것이었다. 여전히 세계적 발레리나다운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녀였는데, 이번 수업에서만큼은 그 카리스마를 선생님의 카리스마로 전환해 장병들을 지도했다. 강수진 단장은 장병들에게 다가가 직접 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또, 놓치는 사람 없이 모든 학생을 고루 지도해주고자 홀 전체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살폈다. 한국 발레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에게 일대일 지도를 받은 장병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뿌듯한 표정으로 현장에 함께 했던 강수진 단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강수진 단장과의 인터뷰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

▲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 Ⓒ김희원


Q1 : GOP 장병들의 발레교실을 시작하게 된 계기.

A1 : 장병들이 군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고, 반복되는 군 생활 외에 다른 방향으로 몰두하는 것이 도움될 것으로 생각했다. 발레를 하는 동안에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야 하므로 잡념에 빠질 수가 없다. 발레를 통해 집중을 경험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무엇보다 몸과 정신을 동시에 다스릴 수 있으니 자신을 위한 투자로 발레가 가치 있다고 본다.


Q2 : 발레와 군 생활, 너무나 다른 분야라고 생각되는데.

A2 : 발레는 규율이 매우 엄격하다. 그래서 나는 발레의 삶은 군인들의 삶이라고 비유하곤 한다. 당연히 완전히 다른 분야이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요구하는 일이고 그만큼 많은 노력과 인내심이 있어야 하므로 그런 점에서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고 본다.

 

학생(장병)의 자세를 직접 바로잡아주는 강수진 단장의 모습

▲ 학생(장병)의 자세를 직접 바로잡아주는 강수진 단장의 모습 Ⓒ김희원

 

Q3 : 오늘 수업을 참관 및 직접 지도한 소감.

A3 : 국립발레단이 진행한 ‘GOP 장병들의 발레교실’ 프로젝트에서 장병들은 완전히 초보자 상태로, 제로에서 시작했다. 발레 수업을 하고, 기초부터 발레를 가르쳐드릴 수는 있지만 커다란 성장과 발전을 경험하는 것은 자기만의 규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 장병들의 모습에서 힘들지만 해내려고 하는 집중력을 보았다. 발레는 집중력 향상에 효과가 있는데, 몸을 움직이는 것도 신경 써야 하지만,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 집중하며 두뇌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중력과 노력으로 이분들은 발전했다. 연습을(수업을) 매일 하지 않았는데도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어떤 분들은 진짜 재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스트레칭에 따르는 고통을 참아야 하고, 다리를 높이 차올리는 동작 등 소화하기 힘든 동작이 많은데, 강한 정신력을 가진 분들이기에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열일곱 명 모두가 노력한 결과가 눈에 보여 뿌듯하고 보람차다.

 

강수진 발레리나와 함께 스트레칭을!

▲ 강수진 발레리나와 함께 스트레칭을! Ⓒ김희원


Q4 : 앞으로의 계획 및 사업의 의의.

A4 : 지금은 열일곱 분이 남았지만, 앞으로 이 프로젝트를 계속할 계획이며 조금씩 (사업의) 범위를 넓혀나갈 것이다. 본 프로젝트에서 제일 중요한 성과는 국군 장병들이 잠시나마 다른 것들을 다 잊고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며, 군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작업이 무용, 발레의 대중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레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늦지 않았다. 나이가 몇이든 상관이 없다. 아마추어들은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취미생활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부담 없이 해보셨으면 좋겠다.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는 장병들의 모습

 ▲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는 장병들의 모습 Ⓒ김희원


 발레는 남성이 소외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예술이다. 과거의 발레 즉 발레 역사의 초기에는 오히려 남성이 주로 춤을 추었고, 여성은 그럴 수 없었다. 프랑스 왕가에서 왕이 직접 발레를 하고, 무대에 서는 일도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루이 14세다. 영화 <왕의 춤>을 보면 ‘춤추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후 낭만주의 사조로 들어서면서 발레는 여성의 예술로 방향을 바꾼다. 낭만 발레에서 선호했던 비현실적 존재, 즉 요정이나 유령 같은 것들을 표현하기에 여성의 신체가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발레는 ‘여성의’ 혹은 ‘여성스러운’ 예술이 되었고, 발레 작품에서 남성의 비중은 작아져 갔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추는 2인무에서도 주로 동작을 보여주는 역할은 여자가, 그런 여자를 잡아 주고 더 돋보이게 해주며 보조하는 역할은 남자가 해야 했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공연되는 발레 작품은 이러한 낭만 발레 시대 혹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주를 차지한다. 후대에 남은 유산이 이렇다 보니 발레는 점점 더 ‘여성의 것’으로 굳어져서, 결국 교육에서도 불균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군 부대에서 진행하는 수업 현장

 ▲ 군 부대에서 진행하는 수업 현장 Ⓒ국립발레단


 만약 발레 작품에서 남성이 주목받는 장면이 많았고, 그들이 발레를 하며 보조적 역할보다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경험을 더 많이 했다면. 남자 어린이들이 태권도를 배우는 체육관보다 발레 연습실을 더 많이 찾아갔을 수도 있다. 어린이들의 상황도 이런데, 어른들은 어떨까. 다 큰 성인 남성이 발레 교습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너무나 이상하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GOP 발레 교실은 더욱 특별했다. 성인 남성 그리고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성까지 갖춘 사람들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것. 이는 암묵적으로 자리 잡은 ‘발레는 여성의 예술’이라는 관념을 타파하는 일이었고, 또 전문 무용수를 길러내는 교육을 넘어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목적의 ‘평생 교육’으로서 춤 교육을 시도한 작업이었다.   

 

‘백조의 호수’ 음악에 맞춰 군무를 선보이는 장병들

▲ ‘백조의 호수’ 음악에 맞춰 군무를 선보이는 장병들 Ⓒ김희원


 수업의 마지막 단계로, 장병들은 8개월 동안 수업에 임하며 준비한 군무를 선보였다. 지도교사 두 사람이 직접 안무한 것이었는데, 여러 동작이 연달아 등장하고 대형도 다양하게 변화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장병들은 당당하게 실력을 뽐냈고, 작품(장면)의 완성도도 높았다. 군무는 독무처럼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부담은 덜 느낄 수 있지만, 타인과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고 서로의 거리와 동선을 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매일매일 단체생활을 하고, 여럿이 행동과 마음을 맞추는 작업을 많이 해서인지 장병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아주 능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발레 연습을 통한 신체 훈련부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예술 활동까지 성공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8개월간 수업에 참여한 장병들과 국립발레단의 지도위원들

▲ 8개월간 수업에 참여한 장병들과 국립발레단의 지도위원들 Ⓒ김희원


 이날 멋진 공연을 보여 준 장병들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있었던 2015 장병 종합예술제에서 ‘백조의 호수’를 무대에 올렸다. 이날 행사를 마지막으로 ‘GOP 장병들의 발레교실’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었지만, 강수진 단장의 바람처럼 이것이 일회성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발레와 만나는 군인, 더 나아가 발레를 만나는 남녀노소 인구가 증가하기를 소망한다. 

 

김희원  

 한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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