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 여행, 촌스러워 아름다운 서울 이야기
게시일
2015.12.16.
조회수
5071
담당부서
홍보담당관(044-203-2053)
담당자
고금희

옛서울여행 촌스러워 아름다운 서울 이야기

▲학림다방 ⓒ김민제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 눈부신 서울의 불빛은 밤이 되면 더욱 찬란해지고 그 안의 현대인들은 세련된 모습을 한 채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서울 사람’ 의 모습을 하고 말이다. 흔히들 ‘서울 사람’하면 차가운 인상에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빡빡한 스케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서울 사람’들의 무대가 되는 곳이 바로 대도시 서울이다.


그런데 서울은 언제부터 이렇게 세련된 것들로 넘쳐나는 곳이 되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하고 복잡한 이미지의 서울, 그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한 때는 서울도 촌스럽고 투박했을 것이다. 경험해본 적도 없는 그 시절 서울이 문득 그리워졌다. 낡고 촌스럽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그 모습이 궁금해 옛 서울을 찾아 떠나는 짧은 여행이 시작됐다.


고집이 지켜낸 전통, 성우 이용원


고집이 지켜낸 전통, 성우 이용원

▲성우 이용원 ⓒ김민제


성우 이용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용원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현재까지 삼대에 걸쳐 서울의 한 공간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성우 이용원은 서울의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작은 이용원 안에는 가위부터 이발가운까지 추억을 떠올리게 할 만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이발사 이남열 씨는 “별로 해줄 말도 없는데 무슨 인터뷰냐.” 말씀하시더니 어느새 커피를 한잔 내어주시고 성우 이용원에 대해 입을 여셨다.


성우 이용원의 내부

▲성우 이용원의 내부 ⓒ김민제


“처음부터 이곳에서 이용원을 하신 거예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이곳에서 이용원을 쭉 하셨으니까. 외할아버지께서 이발 기술을 가지고 계셨고 아버지께서도 당시 이발 기술이 있으셨기 때문에 두 분의 기술이 만났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하는 이발은 전통 일본식 이발인데, 가위만 이용해서 자르는 일본식 이발이에요. 여기에 뭔가를 더해서 나름대로 승화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렇게 이용원을 했어요. 오래전부터. 일제 강점기 때나 한국 전쟁 때도 이 자리를 지키고 쭉 이용원을 했어요. 여러 일도 많이 겪었죠.”


이남열씨께서 이용원의 가위를 보여주고 있다.

▲이남열씨께서 이용원의 가위를 보여주고 있다. ⓒ김민제


평생을 다해 한 곳에서 이용원을 하신 이남열 씨에게 이발은 머리를 자르는 행위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이발의 의미는 좀 다를 것 같아요.”


“이발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게 아니에요.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남에게 이미지를 심어주는 아름다운 예술 행위. 이런 이발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이용원에 오지. 그리고 이발사인 나에게도 잘하고. 그러면 나도 머리를 만질 때 더 잘 하려고 한다고. 그런데 이 이발 기술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정말 많거든. 예를 들어, 이발을 한 지 한 달이 지나도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기술처럼. 이런 기술은 쉽게 완성되는 게 절대 아니에요. 적어도 15년은 걸리지. 그리고 이발 기술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바로 실천에 옮겨버리는 것이고요.”


드라이기와 이발 도구들

▲드라이기와 이발 도구들 ⓒ김민제


“오랜 시간동안 이곳에서 이용원을 하셨으면 주위 풍경도 많이 변했겠죠.”


“많이 변했지. 수도 없이 변했어. 이 주위가 다 과수원이었다고 하면 믿겠어요? 지금은 빌딩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원래는 과수원, 소나무 숲이었거든. 이 옆에서 버섯을 따고 그랬다니까. 근데 이제 다 밀어버리고 집들이 지어진 것이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일들도 있었고.”


지금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서울이지만 과거 서울에서는 진짜 나무들이 가득한 숲도 만나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근데 여기 머리 감는 데에 보니까 식초가 있네요?”


“린스 대신이죠. 요즘은 다들 오염 투성이 약을 쓴다고. 난 자연스러움을 추구해서 얼굴에 스킨도 안 바르는 사람이에요. 여기서도 린스 대신에 식초 물을 사용하고 샴푸 대신에 비누를 사용하지. 린스를 사용하면 그게 머리에 오염이 되는 거거든.”


식초와 세면도구들

▲식초와 세면도구들 ⓒ김민제


이용원 내부에는 정겨움을 주는 오래된 물건들과 난로, 그리고 이발사의 손길이 느껴지는 깔끔하게 널어진 수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물건들 중에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지요. 드라이기도 주문 생산으로 만들고. 이렇게 입구가 좁은 드라이기요. 여기 있는 수건들도 다 내가 손빨래로 해. 수건을 쓰다 남은 이 끝 언저리까지 다 써먹지.”


“이용원에 초상화도 있네요?”


“제가 초상화 그리는 게 취미에요. 머리 모양을 구상할 때 초상화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살려 그려내면서 모양을 구상하죠.”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리셨어요.”


“그리다 보니 그려집디다. 머리 모양을 연구하려고 하나하나 사실적으로 그리다보니까 되더라고요. 여러 유명 인사들부터 우리 부인까지. 다 그렸거든.”


이남열씨께서 손수 그린 인물들의 초상화

▲이남열씨께서 손수 그린 인물들의 초상화 ⓒ김민제


“이제 눈감고도 머리 잘 자르시겠어요.” 라는 말에 이남열 씨는 “안돼요. 이발은 아무리 평생을 했어도 눈 깜깜해지면 못하는 거야.” 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서 그가 이발을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고집스럽게 성우 이용원을 지켜 왔는지가 느껴졌다. 그 고집 덕분에 성우 이용원은 오랜 세월동안 서울에서 변함없이 제 일을 다 하고 있다. 그리고 사라졌을 줄 알았던 소박한 서울은 이남열 씨와 같은 누군가의 그런 고집으로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청춘들의 아지트, 학림다방


학림다방의 대표 메뉴, 비엔나 커피

▲학림다방의 대표 메뉴, 비엔나 커피 ⓒ김민제


서울이 변하 듯, 한국에서 카페가 갖는 의미도 변했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 이상이었고 시대를 반영해왔다. 음악DJ들이 음악을 선곡해주던 음악다방, 사회 문제에 대해 열 띈 토론을 벌이던 공론의 장, 휴식의 공간, 자기표현의 공간 등 카페는 다양한 역할로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다. 학림다방은 그러한 변화 속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6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대학로를 지키는 중이다.



학림다방의 엘피판

▲학림다방의 엘피판 ⓒ김민제


학림다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순간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과거로 돌아온 듯 했다. 카페의 문을 열자 학림다방만의 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낡은 소파와 나무 계단, 탁자들이 학림다방이 지내온 역사를 말해줬다. 게다가 곳곳에 놓인 엘피판, 포스터, 사진 등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물건들이 그 분위기를 더했다.  학림 다방 안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과 점퍼를 입은 대학생들까지 두루두루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젊은이들로 가득한 요즘의 카페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지만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학림다방의 내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학림다방의 내부 ⓒ김민제


1956년 문을 연 학림다방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중심에 자리했다. 여러 문학인들과 예술가, 대학생들의 아지트였던 학림다방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격변의 시기, 많은 이들이 토론을 벌이던 공론의 장이기도 했다. 그 당시 민주화를 꿈꾸며 뜨거운 열정을 불태운 젊은이들은 백발이 된 지금도 학림다방을 드나들고 있다. 학림다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적힌 글귀가 학림다방이 보내온 역사와 그 안에 담긴 노력을 보여준다.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를 어디에서간 서성거리고 있다. 나는 어느 글에선가 학림에 대한 이러한 느낌을 ‘학림은 지금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재의 시간 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되살려 붙잡아 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라고 썼다. 이 게임은 아주 집요하고 완강해서 학림 안쪽 공간을 대학로라는 첨단의 소비문화의 바다 위에 떠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끼게 할 정도다.”


학림다방

▲학림다방 ⓒ김민제


변화의 소용돌이 속 서울에서 같은 모습으로 한 자리를 지켜나간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결같은 뚝심과 고집도, 당당하게 자기 것을 주장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다행히 아직 우리 곁엔 각자의 자리를 지켜가는 이들이 남아있고 그들의 노력으로 서울은 옛 모습을 전부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지켜온 서울의 모습을 추억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서울의 모습, 우리가 추억하는 공간이 아직 서울에 남아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김민제 대학생기자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rlaalswpl203@naver.com

공공누리 2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

문화체육관광부 "옛 서울 여행, 촌스러워 아름다운 서울 이야기" 저작물은 "공공누리 2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 방문통계

통계보기

전체댓글(0) 별점 평가 및 댓글 달기를 하시려면 들어가기(로그인) 해 주세요.

  • 비방 · 욕설, 음란한 표현, 상업적인 광고, 동일한 내용 반복 게시, 특정인의 개인정보 유출 등의 내용은 게시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삭제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및 자료 등에 대한 문의는 각 담당 부서에 문의하시거나 국민신문고를 통하여 질의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