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념 뮤지컬 '덕혜옹주'
게시일
2015.04.21.
조회수
5771
담당부서
홍보담당관(044-203-2053)
담당자
고금희

광복 70주년 기념 뮤지컬 덕혜옹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우리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이다. 역사적 인물들의 일생은 대체로 짧은 한마디의 말로 요약되곤 한다. 하지만 그 짧은 말 속에 요약된 한 사람의 인생에는 무수하게 많은 일이 있다. 역사적 인물의 깊은 사생활로까지 빠져본 적이 있는가? 뮤지컬 덕혜옹주를 통해 조선 황실의 마지막 공주가 아닌, 한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들여다보자. 또한, 그녀의 삶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덕혜옹주 포스터

덕혜옹주 포스터


최근 한국 뮤지컬 시장에는 봄 꽃망울이 터지듯 다양한 소재의 창작 뮤지컬이 등장하고 있다. 이 중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프로그램인 ‘창작 뮤지컬 육성 지원 사업’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어 제작 지원을 받은 ‘덕혜옹주’가 4월 3일부터 6월 28일까지 대학로 SH 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 덕혜옹주는 2012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공연예술 창작 산실 대본 공모 당선, 2013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공연예술 창작 산실 시범공연 지원 당선, 2013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공연예술 창작 산실 우수작품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어 공연 제작의 전 과정을 지원받았다. 그만큼 덕혜옹주는 탄탄한 줄거리를 기반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뮤지컬이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에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을 그린 ‘덕혜옹주’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다가온다.

 

덕혜의 어린 시절 사진

덕혜의 어린 시절 사진 Ⓒ이지연


가슴으로 보고 느끼는 뮤지컬

뮤지컬 덕혜옹주는 세 인물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조국과 가족에게 버림받아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잊지 않으려는 덕혜. 가족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시대와 가문에 휘둘린 덕혜의 남편 다케유키. 덕혜와 다케유키 사이에서 그 어느 쪽도 될 수 없는 딸 정혜. 우리는 세 인물의 고뇌와 사랑을 통해 잊고 있었던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고, 한 가족의 문제와, 그 문제를 화해로 풀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는 시간을 가진다.

 

무대 모습

 무대 모습  Ⓒ이지연


무대 세트는 영상과 세 개의 틀로 이루어진다. 세 개의 틀은 장소를 구분할 뿐 아니라 시간의 이동도 나타내며 전반적인 무대 배경을 담당한다. 특히, 이 뮤지컬은 과거와 현재가 계속해서 교차하여 제시되기에, 세 개의 틀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매우 간단해 보이나 시공간을 구분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고,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깔끔한 연출의 힘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오히려 단조로운 세트 덕분에 극의 감정선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뮤지컬 덕혜옹주는 흔히 알려진 덕혜옹주의 삶과 더불어, 그녀 가족들의 내면까지 파헤친 작품이다. 덕혜옹주는 정혜의 실종이라는 같은 사건에서 출발해 덕혜, 다케유키, 정혜 각각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세 인물의 시선에 따라 각기 다르게 해석되는 사건은 그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뮤지컬 장면

뮤지컬 장면  Ⓒ문화 아이콘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데 나는 나를 알아 ‘덕혜 이야기’

조선 황실의 마지막 공주인 덕혜옹주.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인 고종을 여의고 일본으로 끌려간다. 낯선 땅에서 기댈 곳조차 없었던 그녀지만, 조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일본에 저항한다. 하지만 일본에 있는 동안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어린 나이 홀로 버려진 덕혜는 크나큰 정신적인 상처를 받는다. 결국, 덕혜는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을지도 모를 정신 분열증을 겪게 된다. 그녀에게 조선은 그리운 고향이자, 자신이 지켜야 할 곳이었다. 이렇게 혼자였던 덕혜에게 생긴 딸 정혜는, 덕혜가 기댈 유일한 혈족이었으며,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뮤지컬 장면

뮤지컬 장면  Ⓒ문화 아이콘


사람들은 나를 아는데 나는 나를 몰라 ‘정혜 이야기’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 그리고 일본 백작 다케유키 사이에서 태어난 정혜는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학교 친구들은 그녀를 조선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괴롭힌다. 아버지 다케유키는 덕혜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정혜를 어머니인 덕혜와 만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정혜는 덕혜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한다. 어머니와 딸, 둘의 사이는 물리적 거리만으로 멀어질 수 없었다. 그녀는 ‘소마사에’와 ‘정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괴로워하다 결국, 사라지고 만다.

 

뮤지컬 장면

뮤지컬 장면 Ⓒ문화 아이콘


어머니인 덕혜와 딸인 정혜의 삶은 묘하게 닮아있다. 사실 이 극은 덕혜로 시작했다가 정혜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덕혜는 특별한 존재지만, 정혜는 모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는 엄마 아빠처럼 살기 싫어’라고 말하지만, 교묘하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와 딸의 삶 또한 그렇다. 전혀 달라 보이지만 굉장히 닮은 모습으로 흐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덕혜와 정혜 또한 너무나도 닮은 양상을 띤다. 정혜는 점차 성장하면서 어머니인 덕혜를 닮아간다. 어머니를 똑 닮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는 창을 가지게 되고, 그녀를 진심으로 동정하며 화해를 이룬다.

특히, 이 뮤지컬은 특정 인물을 악인으로 매도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극이 던져주는 실마리를 따라 덕혜옹주의 내면을 파헤치다 보면 점차 그녀의 남편인 다케유키라는 남자의 내면이 보인다. 덕혜를 저버리고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는 다케유키도 결국, 딸을 잃음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 나름의 교훈을 전한다. 이는 어쩌면 덕혜의 아픔이, 결국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시대적 상황의 결과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게다가, 이 뮤지컬은 역사적 시각 또한 놓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공주 덕혜가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로 기모노를 입고, 핍박당하는 장면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연상케 한다. 역사적 시각과 개인의 가족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간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도 두 가지 감동을 선사한다. 

 

커튼콜

커튼콜  Ⓒ이지연


덕혜옹주가 이렇게 100분 동안 꽉 찬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력에 있다. 배우들은 억양, 표정, 호흡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신경 쓰며 연기를 펼쳤다. 그들의 열정은 무대 위에 고스란히 드러났고, 굉장한 흡입력으로 100분 동안 빈틈없이 관객들을 압도했다. 관객들은 덕혜의 시선에서, 정혜의 시선에서, 다케유키의 시선에서 같은 사건을 바라보며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다. 특히, 1인 2역으로 정혜와 덕혜, 어머니와 딸을 오가는 문혜영 배우는 목소리와 행동 하나하나까지 정혜와 덕혜를 구분하며, 한편으로는 동일시하며 어머니와 딸을 표현했다. 매 신마다 순식간에 창법, 말투, 행동까지 변하는 그녀의 모습은 1인 2역이라는 자칫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관객들을 혼란 없이 이끌기에 충분했다.


더욱 특별한 점은, 문혜영 배우가 바로 뮤지컬 덕혜옹주의 집필자라는 점이다. 뮤지컬 덕혜옹주의 집필자이자 극 중 덕혜와 정혜를 오가는 1인 2역의 연기를 펼치시는 문혜영 배우님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1. 덕혜옹주라는 소재를 찾고, 직접 집필까지 하시는 열정을 보였다. 그 계기가 무엇인가요?

우연히 덕혜옹주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것을 보았어요. 아무래도 배우니까 그것을 감성적으로 보게 되었죠. 배우의 눈으로 그 사람을 보면서 마치 덕혜옹주가 나에게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아 저 여자는 되게 살고 싶어 했구나.’ 그런데 살 수가 없었잖아요?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미치면서까지 삶을 영위했겠어요. 그러면서 ‘아 저 여인을 내가 연기해 보고 싶다.’ 하고 배우로서 욕심을 가지게 되었죠. 그때 마침 예술인으로서도 욕심이 있어서 누구나 하는 작품 말고, 관객들에게나 세상에 좀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 그럼 내가 한번 만들어봐?’ 이런 아주 간단한 생각으로 시작했죠. 그리고 창작 산실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으니 거기 공모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배우는 누가 써줘야 작품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작가를 알아봤는데 작가님이 너무 바쁘셨어요. 작가님께서 당신이 덕혜옹주를 하고 싶다면 어떤 방향으로 하고 싶은지를 간단히 써서 보내라 하셨죠. 그래서 쓰다 보니까 결국 제가 쓰게 되었죠. 쓰고 나서 작곡자를 만나고 공모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고, 그래서 제작까지 하게 되었죠. 정말 간단한 생각에서 온 거죠. 그 여자의 작은 외침을 듣고, ’내가 저 여자를 표현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덕혜옹주가 시작되었어요.


2. 극작을 직접 하시고 그 무대에 배우로 오르신다는 것이 관객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문혜영 선생님께도 매우 특별한 일일 것 같다.

우선 극을 쓸 때, 15년 넘게 배우생활을 해 오면서 뮤지컬 세계에서 느꼈던 많은 것들이 도움이 되었어요. 아무래도 배우니까 이 작품이 독특하게 나왔을 것 같아요. 덕혜옹주를 보면 감정선이 굉장히 굵게 흐르고 자잘한 것이 없어요. 그런데 그건 있어요. 내가 썼기 때문에 그것에 매여 있지 않으려고 해요. 혹여나 내가 내 속에 갇혀 있어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없지 않은가. 때로는 누군가 써놓으면 제삼자가 그것을 재해석해서 또 다른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내가 혹시 그 틀에 빠지지 않을까. 고민이 늘 돼요. 모든 사람이 자기 작품이 좋다고 말하지만, 저는 항상 반대로 말해요. “우리 작품 좋지 않아. 완전하지 않아. 반드시 흠이 있어.”라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요. 그래야 완전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일요일에 저희 공연을 처음 봤어요. 그런데 ‘아, 이게 문제구나!’ 하면서 속상해서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3. 시놉시스를 극본으로, 극본을 무대에 직접 올리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혹은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우선, 극본을 쓸 때 가장 신경 쓰였던 점은, 아무래도 전문작가가 아니니 형식에 맞춰 쓰는 것이 힘들었어요. 특히 창작 산실에 공모할 때는 형식이 중요하기에, 띄어쓰기나 연극의 구성요소에 어긋나지 않도록 계속 고민하고 검토했어요. 어느 한 장면을 특별히 신경 썼다는 것은 없어요. 덕혜옹주가 1시간 반짜리 뮤지컬인데, 이게 정말 핵심 진액으로만 모은 거예요. 그래서 지루하지 않고, 감정선이 꽉 차있고, 몰입도가 크기 때문에 집중이 한 번 깨지면 힘들 수 있는 공연이에요. 또한 쓸데없는 신은 모두 제거했어요. 모든 장면이 그만큼 중요하죠. 대본을 무대에 올리면서 사실 걱정했던 것은 1인 2역에 있어서, 그리고 시간 이동에 있어서 관객이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그것에 대해서 어려워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래서 너무 감사했어요.


4. 1인 2역을 연극에서 시도한다는 것, 특히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한 사람이 표현한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어려운 점이나,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저는 한 아이의 어머니도 아니지만, 이 글은 저희 어머니를 생각하며 썼어요. 사실 요즘 모든 집안이 건강하지는 않잖아요. 저도 커오면서 엄마와도, 아빠와도 충돌이 있었어요. 차츰 성장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엄마와 아빠를 다시 보게 되니까 이 사람들의 삶도 비참한 거죠. 엄마도 어린 시절 이런 상처가 있었고, 아빠도 이런 상처가 있었고. 덕혜가 불행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친 것처럼, 엄마 아빠도 삶의 불행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방어한 거죠. 엄마 아빠의 삶을 다시 보니, 그것이 이해가 되었어요. 제가 교회를 엄마랑 같이 다니는데,  엄마랑 되게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제가 봐도 엄마가 하시는 행동이나 말투를 많이 따라 해요. 엄마와 딸의 1인 2역은 사실 어려울 것이 없어요. 딸이 엄마를 닮아가거든요. 그래서 딸은 이렇게 연기해야지 엄마는 이렇게 해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두 사람은 너무 닮아있거든요. 따라서 표현적으로 덕혜와 정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차이를 두긴 했지만 감정적으로 어려운 것은 없었어요. 덕혜를 보면서는 우리 엄마를, 정혜를 보면서는 저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실 덕혜를 보면 저희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요. 삐딱하게 서 있거나, 손동작이나.


5. 극 중 시간을 차례대로 배열하지 않고 교차시켰는데 이 부분에 대한 작가님의 설명이 듣고 싶다.

실제로 덕혜가 일본에 갔을 때 보온병에 물을 떠다니고 그랬요. 혹시 아버지처럼 자신도 독살당할까 봐 두려웠던 거죠. 덕혜는 결혼하고 나서 그나마 안정감을 찾았는데, 왜냐하면 그동안은 모든 사람이 주시하고 살았잖아요. 결혼을 하면 조금 분리될 것 아니에요? 사실 처음에는 덕혜의 왕따 신이 있었어요. 그것을 빼고 정혜의 왕따 신을 넣은 거죠. 사실 이게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것이에요. 정혜가 부모와의 단절로 느낀 상처. 덕혜도 부모와의 단절을 겪었죠. 전쟁으로 인해 고립된 정혜, 일본으로 와 고립된 덕혜. 왜 이 문제가 생긴 것인가 하면, 사실은 덕혜가 기차를 타고 일본으로 끌려왔을 때 모든 것이 시작된 거죠. 더 근본적으로는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가 시작이겠죠. 즉, 우리의 문제는 지금 이 상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 원인이 있는 거죠. 그래서 시차를 둔 거요. 또한, 이 극은 정혜가 실종된 후 다케유키의 기억 속에서 시작돼요. 딸아이가 왜 없어졌어? 그때 걔가 울었는데, 왜 울었지? 걔가 그 옷을 샀는데? 왜 산 거지? 이렇게 하나씩 유추하잖아요. 그래서 시간이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죠.


6. 극 중에서 대사가 대부분 한국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한국어가 구분될 수 있도록 억양 등을 잘 맞추셨다. 일부로 유도한 것인지, 연출을 위한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다.

처음부터 캐릭터를 잡을 때 엄마인 덕혜는 오히려 되게 강한 캐릭터로, 딸 정는 금방 부서질 것 같은 아이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엄마는 톤도 굉장히 낮고 노래 음색도 낮은 음을 많이 쓰죠. 또한, 눈치 채셨을지 모르지만, 표현에서도 도치법을 많이 썼어요. “좋네요. 시원한 바람이” 이런 식으로. 그리고 말이 대부분 짧죠. 반면, 정혜는 유리알 같은 아이라서 굉장히 높은 목소리를 썼어요. 또한, 오히려 정혜는 이 극에 나오는 어떤 일본 사람보다 일본인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그 아이가 스스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완전한 일본인처럼 보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요? ‘나는 반반이 아니라 일본인이야.’라고 보이고 싶었던 거죠. 따라서 어색할 정도로 일본인다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과장된 일본인 억양을 생각하되, 관객들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 정도의 일본인 억양을 찾기 위해 노력했죠.


7. 뮤지컬 '덕혜옹주'는 2012년,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공연예술 창작 산실 대본 공모 당선을 비롯해 2013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공연예술 창작 산실 시범 공연 지원작 당선, 우수작품 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본인이 직접 쓴 작품이라 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당선되실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사실은 제가 처음 집필한 작품이고, 2년 동안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너무나 많은 감정을 가졌어요. 이 작품을 처음 쓸 때 주변 사람들이 말렸어요. 사실 대학로나 주변 창작들을 보면, 로맨틱 코미디나 재밌는 작품들이 흥행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누가 이런 역사물을 보느냐‘ 했죠. 그런데 제가 이 작품을 첫 번째 이유는, 분명 사람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 공연을 보러오잖아요? 어떤 사람은 그것을 웃음으로 찾지만, 저는 사람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는 모두는 관계 속에서 힘들어 하잖아요. 엄마와 딸, 아빠와 딸 모두.

이 극의 세 인물이 극 안에서 서로 위로받는 것은 없어요. 대신 보는 내가, 관객이 인물들을 보며 위로를 받는 거죠. 다케유키의 경우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다 실수한 거잖아요? 또, 내가 누군데 우리 엄마가 정혜 같아, 다케 같아.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상처를 위로하고 회복하길 바라면서 이 글을 썼죠. 그래서 저는 분명히 사람들이 재미있는 작품을 4번 봤다면 1번쯤은 이렇게 가슴이 위로받는 작품을 볼 것이다 생각했어요. 힘들게 썼기에, 확신이 있는 작품이었고 창작 산실이라는 좋은 제도에 당선되어 매우 기뻤죠.


8. 덕혜옹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우리가 모두 자격을 고 태어나진 않잖아요? 누구든 훈련받고 직책을 맡는 것이 아니에요. 훈련받고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고, 딸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사람도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고, 내가 의도치 않게 한 말이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죠.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랬구나. 우리 엄마가 그랬구나. 내 딸이, 남편이 그랬구나.’ 그러면서 내 마음의 무거운 짐, 아픔을 좀 펼치고, 회복해 나가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어머니가 생각나요.’라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공연하기 전에 항상 기도해요. ‘오늘도 상처받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위로받고 가게 해 주세요.’라고.


9. 덕혜옹주는 한국적인 소재로, 한국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한국형 창작 뮤지컬이다. 이렇게 한국적인 소재로 만든 창작 뮤지컬이 외국에서 소재를 따온 창작뮤지컬을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면?

결국엔 ‘정서’죠. 왜냐하면, 시각적인 것은 한계가 있지만, 우리 모두 정을 그리워해요. 때로는 화려한 음식을 먹고 싶지만, 며칠 지나면 또 된장찌개가 먹고 싶고 김치가 먹고 싶어지죠. 더군다나 우리나라에 이렇게 잊혀가는 좋은 소재가 있잖아요? 역사를 되돌아볼 줄 알 때 미래가 있는 거죠. 특히, 중요한 건 우리의 것이 살아 있어야 우리가 살아 있다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침당하더라도 우리의 정신이, 문화가 살아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좋은 기관에서 조금은 수고스럽겠지만, 정말 사람들이 이런 작품이 있는 줄 몰라서 못 보러 오는 분들이 많거든요, 살아나려는 극단을 자세히 살펴줘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면 감사할 것 같아요.


뮤지컬의 본래 매력이 화려한 시각 효과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에 있다면, 덕혜옹주는 잔잔하게, 하지만 강렬하게 관객들의 마음에 위로를 던져 주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창작 산실이라는 좋은 제도로 인해 앞으로도 덕혜옹주처럼 작지만 강한, 창작 뮤지컬이 많이 발굴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는 창작 뮤지컬을 단순히 발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작된 뮤지컬이 성장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줄 필요가 있다. 애써 제작된 질 좋은 작품들을, 관객들이 ‘알지 못해’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창작 뮤지컬에 더욱 관심을 두어, 창작 뮤지컬 시장이 부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공연 정보>

뮤지컬 > 창작

일시 2015. 4. 3.~2015. 6. 28.

장소 대학로 SH 아트홀

출연 문혜영, 초아(크레용팝), 윤영석, 김준겸, 이동준, 한연주,

관람등급 만 12세 이상

관람시간 100분

 


문화체육관광부 이지연 대학생기자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idl5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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