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달리 읽힐 두 번째, <세컨드> 필름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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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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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달리 읽힐 두 번째, <세컨드> 필름 매거진

 

처음과 달리 읽힐 두 번째 <세컨드> 필름 매거진 

[ⓒ김정서]

 

미국 유명 시트콤 <프렌즈>에선 등장인물 로스가 황금 비키니 차림의 ‘레아 공주’를 성적 판타지로 꼽는 대목이 나온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중심인물 중 하나인 레아 공주는 당대에 찾아보기 힘들었던 진취적 여성상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녀조차도 여성 캐릭터의 주변화와 ‘공주’라는 직함이 배양하는 성애화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개봉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주인공인 여성 캐릭터 레이는 좌중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선보이며 선망과 시기를 두루 얻는 ‘전사’로 수식된다. <스타워즈>의 첫 영화가 개봉(<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1977년)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스타워즈 세계관에 새로운 유형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 것이다.

 

<세컨드> 작업실에 자리한 로고 현수막  

[▲ <세컨드> 작업실에 자리한 로고 현수막 ⓒ김정서]

 

일찍이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이 중심에 등장하지 않는 대다수의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주인공에게 변화의 계기를 제공하거나 서사의 흐름을 방해해 반전을 주는 도구적 존재에 머물러야 했다. 문제도, 문제의식도 있다하더라도 아직 갈 길은 지척이다. 상기 논의는 아주 최근에서야 움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태동의 단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입은 너무나도 값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여기, 영화 매체가 여성 캐릭터에게 가하는 불합리를 지적하고 편협을 꼬집는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 <세컨드> 필름 매거진이다.

 

“세컨드는 여성 캐릭터를 탐구합니다”

- <세컨드> 필름 매거진 편집진 일동 -

 

여성 캐릭터에의 다각적인 탐구를 목표로 하는 <세컨드> 필름 매거진은 2016년 창간호 ‘납작한 여자’를 발표하며 첫 발을 뗐다. 이후 활동은 일방향의 소통으로 그칠 수 있는 인쇄활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상영회를 개최([여자 사람] 2016년 11월 진행)하고 여러 예술문화 교류기회에 참여([다다름 필름파티],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언리미티드 에디션])하는 등 쌍방소통을 추구하는 행사로까지 이어졌다. 이듬해인 2017년에 2호 ‘여성의 힘’까지 출간한 <세컨드> 필름 매거진은 이제 영화계 내 페미니즘 의제에 논하는 장이 되기를 자처한다. <세컨드> 필름 매거진은 무엇을 봐왔으며, 무엇을 말할 것인가. 편집진 안정연 에디터, 정경희 에디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안정연 에디터(우)와 정경희 에디터(좌) 

[▲ 안정연 에디터(우)와 정경희 에디터(좌) ⓒ김정서]

 

Q. 모두 <세컨드> 필름 매거진 이전까진 잡지를 출간해본 적 없는 비전문 출판인이었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잡지 제작을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정경희 에디터(이후 ‘경희’) : 편집진 같은 경우 영화 연출 스터디 모임에서 모두가 만났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데 자교에 영화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길이 녹록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커뮤니티에 영화 연출 스터디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연락해 함께하게 됐다. 다들 영화 연출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까닭에서인지 스터디의 밀도가 높았다. 시나리오와 영화 비평들을 써오곤 했는데 그 결과물들도 좋았다. 이를 일회성으로 소비하기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잡지로 엮어보자고 의견이 모였다. 마침 당시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되고 독립출판을 다루는 서점이 여럿 들어서면서 독자적인 출판물 제작이 활기를 띄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Q. 영화를 공부했다면 연출과 관련된 테마를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성 캐릭터’를 선택했다.

안정연 에디터(이후 ‘정연’) : 아무래도 스터디다보니 소위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보는데 자꾸 위화감이 들더라. 연출이 훌륭한 것도 알겠고, 좋은 영화인 것도 알겠는데 내 가치관과 위배되는 느낌이랄까. 영화 감상 후 비평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그런 식의 이야기가 더러 나왔다. 나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이었던 거지.

경희 : 맞아, 영화를 보고나면 그러한 불만을 성토하는 자리가 길게 이어지곤 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쓰는데 내가 쓰는 여성 캐릭터도 별반 다를 것이 없더라. 민폐형 캐릭터, 질투형 캐릭터와 같은 기존 영화들 속 여성들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더라도 해당 전형들에 반복해 노출되면서 여성 캐릭터를 발상할 표본사례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이 절반씩 자리를 차지하며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현실은 어떠한가요.”

- <세컨드> 1호 납작한 여자 中 -

 

<세컨드> 작업실 전경 

[▲ <세컨드> 작업실 전경 ⓒ김정서]

 

Q. 나도 마냥 좋게 보았던 작품에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문제를 깨닫고 그 작품을 ‘잃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세컨드>가 대단했다. 여성이라면 한번쯤은 불만 가졌을 영화적 순간을 인물 단위로 채집하는 작업을 해낸 것이니까. 제작 작업에서 특별히 유지하는 철칙이 있을까.

경희 : 처음 잡지 제작을 결정했을 때부터 편집진 모두 적당히 보기 좋은 글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뼈 없이 수사적인 표현만 나열한 글, 동어 반복을 거듭해서 보기에 지루한 글에 대해선 최대한 지양하자 주의였다. 내재된 사회의 억압 때문에 논지를 흐린 글에 대해선 “이는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주제다. 지금 모종의 두려움 때문에 핵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라는 직설적인 충고가 나오기도 했다. 이 치열한 과정에서 우리끼리 더 많이 배웠다. 막연하게 ‘여성 캐릭터가 다양해져야지.’ 정도의 수준에서 멈췄다면, 어떤 여성 캐릭터가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고가 이루어졌다.

정연 : 가령 예전에 ‘모성애’ 관련해 이야기를 할 때 한정적으로 소비되는 어머니상을 지적하는 데에 그쳤다면, 대안은 어떤 캐릭터가 있는지 그게 영화라는 매체가 구현할 수 있는 캐릭터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사실 편집진 모두 날선 사람들이 전혀 아닌데도 회의 때만큼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또 유의하는 점 중 하나가 자아도취 되지 말자는 것이다. <세컨드>는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결국 글은, 특히나 깨달음을 요하는 글은 많은 사람에게 읽혀야 하니까. 페미니즘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글을 지향한다고 보면 된다.

경희 : 씨네페미니즘 서적이 가져야 할 전문성과 영화 잡지가 가져야 할 대중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 균형 찾기에 실패한 경우 ‘글이 난리 났다.’며 바로 혼난다. (웃음)

 

Q.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어서 그럴까, 읽으면서 공감도 많이 되고 배우는 것도 참 많았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감화 받지 않았나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창간호는 목표액에 150%, 2호는 목표액에 197%에 달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냈다. 호응이 엄청나다.

경희 :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크게 일면서 영화계까지 그 영향이 미치기 시작한 것 같다. 2017년 동안 이루어졌던 ‘문화계 성폭력’에 대한 고발도 이러한 흐름 때문에 가능했던 거겠지. 편집진 모두 영화계의 일원으로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결과물을 낸 건데, 정신 차리고 보니 선두주자가 있더라.

정연 : 솔직히 2호를 내고 나서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독자층은 이미 모두 포섭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잠재 독자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행사에서 부스를 설 때마다 ‘이런 잡지가 있었냐.’라며 눈이 반짝이는 분들이 꼭 있더라. 우리와 같은 기능을 하는 담론의 장이 필요한 분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많다는 얘기겠지.

 

“여성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로 더는 여성 영화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겠죠.”

- <세컨드> 2호 여성의 힘 中 -

 

<세컨드>에서 나온 저작물들 

[▲ <세컨드>에서 나온 저작물들 ⓒ김정서]

 

Q. 여성은 주 소비자층으로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면서도 ‘팬덤’이라고 쉽게 폄하되곤 했다. 영화계의 페미니즘 논의와 <세컨드>의 성공이 큰 시사점을 갖는 것이, 여성이 소비자로서 권력을 가진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라 생각한다.

경희 : 페미니즘의 바람에 따라 당장 페미니즘 영화가 우후죽순처럼 제작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가 여성 인권에 상치될까봐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권력’이 생긴 것이다.

 

연극 <조이랜드> 진행 장면 

[▲ 연극 <조이랜드> 진행 장면 ⓒ<세컨드> 필름 매거진]

 

Q. 영화계에서 여성 전체의 권력이 다소 성장함과 함께 <세컨드>의 발언권도 영역을 넓혀간다고 생각한다. 2016년과 2017년만 해도 잡지 출판을 뛰어넘은 다양한 활동이 눈에 띄었다. 더욱이 최근엔 연극까지 올렸다고 하던데.

정연 :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두 달마다 한 명의 예술가에게 존경을 표하는 [AM I ART&TALK]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난 9월, 10월에 페미니스트 작가 바바라 크루거가 주인공으로 선정됐고, 관련 프로그램 기획에 대해 우리에게 문의가 들어왔다. 그 기획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 연극 <조이랜드>였다. 영화의 서사를 위해 캐릭터성이 소거돼야 했던 여성 캐릭터 3명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주 내용인데, 한때 유행했던 방탈출게임 형식을 차용한 추리게임 연극이다. 해당 연극의 대상이 된 캐릭터는 <베테랑>의 미스 봉, <탐정>의 미옥, <건축학개론>의 서연으로, 이야기의 편의를 위해 이름이 삭제되거나 입장이 충분히 해명되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이다.

 

Q. <세컨드>가 쌓아올린 성과와는 별개로, 독립출판 자체가 경제적 이윤을 얻기 어렵다고 들었다. 편집진이 생각하는 <세컨드>의 미래와 최종목표는 무엇일까.

정연 : 영화 연출과 비평은 꾸준히 할 예정이지만, 영화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대개 영화를 하고자 한다면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꿈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게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러한 개인적 영달에 모든 것을 바치기보다는 연출과 비평 그리고 다른 일상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지향한다. 인생이 영화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사실 이건 나 말고도 <세컨드>의 다른 에디터들도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인데, <세컨드>가 모두를 지탱해 줄 연출모임이자 비평모임으로 기능하길 바란다. 우리 내에서도 이따금씩 이야기하는 최종 목표는 영화 제작사 설립이다.

경희 : 2018년부터 글을 쓰는 기회를 좀 더 자주 만들고 잡지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씨네클럽과 같은 소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기회를 갖고 싶다. 지금 현재 이 일을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서로에게 ‘어떤 한 지점’을 함께 해준 버팀목이었다. 씨네클럽을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과도 그러한 연대를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지금 이 모임이 어떤 형태로든 계속 지속됐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인데, <세컨드>는 계속 발간했으면 한다. 100호까지 내보면 어떨까.

정연 : 그때쯤이면 애장판으로 내도 좋겠다. (웃음)

경희 : 그러네. (웃음) 그때는 1, 2호 보면 ‘이게 언제 적이야’ 하겠지.

 

중심이 아닌 주변에게 앵글을 돌릴 두 번째를 기대하며

 

<세컨드>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팸플릿들 

[▲ <세컨드>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팸플릿들 ⓒ김정서]

 

한국에서 제작한 천만관객 영화 13편(2018. 1. 1. 영화진흥위원회 기준)에서 62명의 ‘주연’ 중에 여성 캐릭터는 16명에 불과하다. 극의 중추가 되는 서사를 중심이라 한다면 여성 캐릭터는 그 언저리 혹은 아주 동떨어진 주변에 존재했다. ‘영화의 중심에 서는 우선의(first) 존재’가 아니라 ‘주변으로 소외된 존재(second)’에 집중하겠노라며 그들은 스스로를 <세컨드>라 이름 지었다.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제목 ‘세컨드’는 여성 캐릭터의 지칭으로 그치지 않을 듯하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이면을 볼 두 번째(second)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거창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내 주변의 사소한 일들부터 의문을 가지며 시작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수긍하기 어렵다면 <세컨드>를 펼쳐봄은 어떨까. <세컨드>는 당신이 봤으나 보지 못한 것을 보는, 처음과 달리 읽힐 두 번째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김정서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talephile@naver.com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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