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수교 130주년, 두 나라 연극인들의 합주 - 연극 <빛의 제국>
게시일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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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희

 

 한불수교 130주년, 두 나라 연극인들의 합주 - 연극 <빛의 제국> 

 

주말 아침, 잠이 덜 깬 눈으로 평소와 같이 조심조심 창문을 열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건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찬 기운이 아닌 살랑살랑 따뜻한 봄의 냄새였다. 봄비가 마법을 부린 듯 겨울이 a취를 감추고 뾰로롱 봄이 찾아왔다. 유독 길었던 겨울이었기에 유난히 더 반가운 봄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 우리나라도 프랑스와 함께하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바로 ‘한국 내 프랑스의 해 (2016년 3월부터 12월까지)’이다.

2016년도는 한국과 프랑스가 교류를 맺은 지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기념적인 해를 맞아 양국 대통령의 합의하에 2015~2016년도가 ‘한불 상호교류의 해’로 운영된다. 이 기간은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한국 내 프랑스의 해’로 세분되어 양국에서 다채로운 문화교류 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올해 3월부터 시작되는 ‘한국 내 프랑스의 해’는 창조와 혁신이라는 슬로건 아래 대규모 문화, 경제, 학술, 스포츠 등등의 행사가 이루어진다.

 

 

포스터

포스터 Ⓒ국립극단

 

우리나라의 연극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국립극단에서도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연극 <빛의 제국>(2016. 03. 04~2016. 03. 27 / 명동예술극장)을 올린다. 이 연극은 국립극단과 프랑스의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의 합작으로 2013년도부터 기획된 대작이다. ‘한국 내 프랑스의 해’이기 때문에 프랑스 연극이 내한하는 뻔한 형태일 것으로 상상하기 쉬우나 이 연극은 김영하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문소리, 지현준 등 배우가 출연하고 아르튀르 노지시엘(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은, 말 그대로 ‘두 나라 연극인들의 합주’이다.


공연이 올라가는 명동예술극장
공연이 올라가는 명동예술극장 Ⓒ박선아

 

 

프랑스 연출가의 파란 눈을 통해 본 <빛의 제국>과 <대한민국>


관객의 질문을 듣는 아르튀르 노지시엘과 통역사

관객의 질문을 듣는 아르튀르 노지시엘과 통역사 Ⓒ박선아

 

2013년도에 아르튀르 노지시엘(연출가)이 원작 소설을 국립극단 측으로부터 받았을 때 ‘이 공연을 올리려면 24시간을 공연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긴 소설을 2시간 정도의 공연으로 각색하는 데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쳤다. 첫 번째는 책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꼽고, 두 번째 단계는 좋아하는 부분의 조각을 가지고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다듬어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연극 <빛의 제국>은 소설의 3분의 1의 분량을 담고 있다.

<빛의 제국>의 주요 갈등은 남자 주인공에서부터 출발한다.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인 김기영은 10년 넘게 간첩의 신분을 잊고 대한민국에 적응해 살아왔다. 마리라는 여자와 가정까지 꾸리며 평범한 영화 수입업자의 삶을 사는 기영에게 어느 날 ‘모든 걸 버리고 24시간 이내에 귀환하라’는 이메일 한 통이 온다. 연극에서는 이 이메일 한 통을 통해 시작된 기영과 주변 인물들의 갈등을 보여준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간첩은 프랑스인 연출가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연출가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담고 있지만, 역사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것이 어떻게 계승되어 지금까지도 전해지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 연극을 풀어나간다.

배우들은 연극이 진행되는 도중에 본인이 생각하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나 분단에 대한 인상을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한다. 그때마다 무대 뒤에 사선으로 있는 영사 벽에는 애니메이션 ‘똘이장군(1978년, 김청기 감독)’이 나온다. 반공사상을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과 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고 자란 세대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공연 중에 시각과 청각을 통해 관객들에게 묘한 분위기와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군가는 한 번쯤 해보았을 생각들이다. ‘통일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북한을 도와야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해본 경험이 있다던가 ‘뉴스에서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공포에 떨었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배우들과 공연을 관람하는 우리 세대는 분단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다. 그렇기에 이 장면들은 ‘과거의 역사가 개인에게 어떻게 계승되는가’ 라는 연출가의 의도와 더욱 부합한다.

 


낯설지만 똑똑한 연출기법

 

커튼콜

커튼콜 Ⓒ박선아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는 굉장히 ‘극적’이다. 하지만 연극을 보고 나온 대부분 관객은 연극이 ‘정적’이라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부터 무대 세트까지 차분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아침드라마의 영향을 받으며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는 연기에 익숙해져 있다.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눈물을 빠르게, 많이 흘리는 배우에게 ‘열연’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연출이 생각하는 ‘열연’의 기준은 우리와 달랐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이 기존의 관습과 클리셰(고정관념)을 탈피하여 대본과 상황에 집중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진실한 감정을 끄집어냈다.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형광등 조명 밑에서 표현되는 배우의 감정들은 연극이라기보다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관객들이 극에 편안히 몰입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보며,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갖고 개입할 여지를 만든다. 우리에게도 ‘분단’ 혹은 ‘비밀’에 대한 기억이 있는지를 작품이 적극적으로 묻는 것이다.

무대와 의상은 세 가지 톤의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색이 포함하는 아이디어는 ‘북한과 남한 사이’가 될 수도 있고 ‘거짓말과 진실 사이의 공간’이 될 수도 있고 ‘꿈’과 ‘현실’ 사이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흑과 백처럼 분명히 양립하는 어떠한 것이 아닌 그사이의 것을 표현하고자 한 연출가의 의도가 세심하게까지 느껴진다.

아르튀르 노지시엘은 대한민국 사람보다도 더 깊고 풍부한 통찰력으로 <빛의 제국>을 완벽하게 연극 언어로 숨 쉬게 하였다. 연극과 더불어 진행되는 영상들은 그가 얼마나 정보를 담고 있는 시각적 요소들(미장센)을 배치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는지 깨닫게 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 김기영이 이메일을 받은 후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일으킬 때 영상 속에서 기영은 화면에 직접 나오지 않고 사물에 반사되어 나오거나 그림자로 나온다.본명인 김성훈과 간첩인 김기영 사이에서 정체성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섬세하게 계산된 미장센들은 몽타주 스타일의 영상과 함께 극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기영이 손전등을 통해 관객석을 비추고, 배우들을 비추고, 본인의 얼굴을 비칠 때 이 연극이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라고 묻는 듯한 기분이 든다.


 

원작자 김영하가 본 파란 눈의 연출가와 연극 <빛의 제국>

나의 창작물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2차 생산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김영하 작가는 원작자로서 공연을 보는 일은 괴로운 일이라 이야기한다. 10년이 지나서야 더 좋은 대사가 생각나기도 하고 ‘왜 이 장면을 써서 배우를 고생시켰나’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각색하는 사람으로서도 원작이 있다는 것은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혹여라도, 원작자의 의도를 훼손하거나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이 원작자 김영하에게 각색을 제안했을 때 그는 거절하며, 작품을 각색할 아르튀르 노지시엘과 발레리 므레장에게 자유를 주었다. 완성된 연극이 본인의 작품에서 출발해 멀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보는 것은 감독의 재능을 보는 일일뿐,본인의 작품이 훼손되었나 찾는 과정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원작자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아르튀르 노지시엘이 만든 <빛의 제국>은 과감하다. 텍스트에 숨을 불어넣어 입체화시켜 여러 개의 이야기들을 한 번에 겹쳐놓는다. 노지시엘이 한국의 삶과 영화를 보고받은 인상을 겹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관점으로는 스파이 김기영이 만났던 사회일 수도 있다. 원작자가 다양한 접근의 여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작품 또한 연출가의 스타일을 맛깔나게 입을 수 있었다.

김영하와 발레리 므레장,아르튀르 노지시엘은 작품의 각색 과정에서 여러 번 만났다. 그 셋은 관광하다 만난 외국인 친구처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각색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가 아닌 한국의 영화나 배우 이야기, 프랑스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서로의 역할에 대한 탐색 과정이 존재했기 때문에 연출가가 쉽게 공감하지 못할 분단과 대한민국에 더 깊게 다가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배우 지현준과 문소리를 선택한 이유

 

김기영 역의 지현준 배우
김기영 역의 지현준 배우 Ⓒ박선아


장마리 역의 문소리 배우

장마리 역의 문소리 배우 Ⓒ박선아

 

지현준과 문소리는 이 작품에서 각각 김기영과 그 부인 장마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두 배우 모두 연출가가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캐스팅 1순위에 놓았다. 게다가 두 배우 모두 연출가를 만나자마자 단번에 출연 제의를 승낙했다.

이 연극은 김기영과 장마리. 두 사람의 평행 구조를 그린다. 분단의 역사가 한 커플에게서 발견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렇기에 시작점부터 다른 두 배우가 필요했다. 삶을 통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연극으로서 화해시키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리어가 다른 두 배우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다른 커리어로 인한 둘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고 이는 극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

연출은 연극 안에서 두 배우를 만나게 했으니 작업과정에서 둘의 공통점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 두 배우가 갖는 공통점은 바로 ‘용감하고 똑똑하며 아름답다’는 점이다. 연출가가 평하는 지현준과 문소리는 관대하고 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캐릭터로서 무대 위에 섰을 때 동동 뜨지 않고 어우러지는 데에 일조했다. 서로 모르던 두 사람이 이 작품을 올리면서 다른 경험과 생각과 목소리를 하나로 모았고 동의성을 만들어 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또한 서로 다른 가치관과 커리어와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삶이라는 무대 안에서 모습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삶이라는 기계는 나름의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배우들의 캐스팅부터 우리의 삶을 무대 위에 축소시켜놓았다고 볼 수 있다.



두 나라 연극인들의 합주

 

주연배우와 연출

주연배우와 연출 Ⓒ박선아

 

연극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시작점은 ‘제의’에서부터이다. 이 연극은 근래 어떤 작품보다도 연극의 본래 목적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연극이 아닌 ‘제의’로서 우리가 이 드라마를 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의 ‘비밀’과 ‘분단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대 속 인물들과 나의 처지는 다른 듯해 보이나 한 점에서 만난다. 우리는 그 부분에서 미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이방인 연출가가 우리나라 연극인들과 함께 우리를 위해 벌려놓은 ‘제의’에 3월을 맞는 수줍은 마음으로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제의는 절대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속에 작은 우리들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극을 보고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는 그날은 또 다른 역사가 쓰이는 날은 아닐까?


명동예술극장에 걸린 현수막

명동예술극장에 걸린 현수막 Ⓒ박선아

 


<연극 빛의 제국>

- 2016년 3월 4일부터 3월 27일까지 / 명동예술극장

- 월, 수, 목, 금 7:30 pm / 토, 일 3:00 pm / 화요일 공연 쉼

- 티켓 가격 1만 원부터 5만 원까지

(2016년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공연 예정)

- https://youtu.be/T_Y_S8yqouA

 

 

 문화체육관광부-박선아 대학생기자 성균관대학교/연기예술학과 kslvbsa@naver.com 문체부 대학생기자단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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