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상암구장서 초중고 리그 결승전을”
게시일
201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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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조수빈

‘승부 지상주의’와 ‘엘리트 선수 양성’에 골몰해왔던 학원체육이 바뀌고 있다. 운동에만 올인해왔던 학생선수들이 비로소 학습권을 되찾게 됐고, 돈이 없어 운동을 포기해야 했던 아이들이 공짜로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학교 현장에서는 스포츠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스포츠 강사’도 등장했다. 지난 1~2년 새 벌어진 변화이다. 공감코리아 korea.kr은 우리 학원체육의 변화상을 총 6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홍명보 사진
지난 3월 6일 토요일, 서울 중앙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초중고 축구 주말리그 개막 행사에 가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왔다. 지난해 출범한 초중고 리그는 그 성과가 좋아서 올해는 첫해보다 33팀이나 늘어난 609팀이 참가했다고 한다.

중앙고와 대동세무고가 대결한 이날 개막 경기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주말 방과후를 맞아 양교 재학생, 동문 선배, 학부모들이 벌이는 열띤 응원전도 볼 만했다. 또 두 학교의 밴드부, 힙합 동아리, 풍물패 학생들이 선보인 축하 공연도 분위기를 흥겹게 했다.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서 학교와 지역 사회의 축제처럼 느껴졌다. 필자가 선수로 뛰던 중.고교 시절에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었던, 달라진 학원 축구의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축구 선배로서 뿌듯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초중고 주말 리그에 대해서는 다른 축구인들보다 더 애착을 갖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2년 전인 지난 2008년 11월, 초중고 리그 정책 발표 행사에서 나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님과 함께 공동으로 발표를 하기도 했는데, 굳이 그런 인연이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주말 리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절실히 공감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 학원축구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대회를 해왔는데, 장점도 일부 있긴 하지만 그 폐해가 더 컸다. 한 경기를 패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토너먼트 방식은 오로지 승패에만 매달리게 만드는 허점이 있다. 또 대회 기간 중에는 거의 매일 경기를 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팽개치고 오로지 운동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어서 교육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반면, 축구 선진국에서는 유소년기부터 ‘리그 방식’을 통해 선수를 육성한다. 매주 한 경기씩 치르는 리그 방식은 승부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에 다양한 전술과 기술을 시도할 수 있고, 체력적인 부담없이 경기에 임할 수 있어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또 주말에만 경기를 하므로 주중에는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사실, 주말 리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과거 우리 선배들이 운동하던 때부터 이미 다들 인식하고 있었다. 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나 선,후배들과 만나 얘기를 해도 모두 한결 같은 의견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운동장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자금도 부족하고, 행정적인 준비도 안돼있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다행히 정부 관계자와 대한축구협회의 과감한 결단에 이어 축구 인프라도 어느 정도 갖추어지게 되면서 이제라도 출범의 닻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을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그날 정책 발표장에 참석할 수 있었고, 지난해 봄에는 ‘공부하는 축구 선수 육성’을 주제로 한 초등학교 선수 대상 강연과 축구 클리닉에도 기꺼이 참가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의 이야기를 듣는 선수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주말리그는 꼭 정착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최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지도자와 선수, 학부모들이 지난 1년간의 주말 리그에 대체로 만족하며, 특히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다는 뉴스를 듣고 매우 반가웠다.

대한축구협회 직원들 얘기로는 초중고 리그는 연간 약 100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인데, 스포츠토토 수익금이 상당 부분 투입된다고 한다. 정부의 행정, 재정적 지원과 축구인들의 의지가 어우러져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방과 후 훈련을 위한 조명시설이나 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설치, 지도자 처우 개선과 같은 남은 과제도 앞으로 정부와 축구계가 함께 잘 풀어나갔으면 한다.


축구가 계기가 되어 농구, 야구 등 다른 종목도 학원 대회 방식이 바뀔 예정이라고 들었다. 부디 모든 학원 스포츠로 전파돼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 하는 스포츠 엘리트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가 일본에서 프로선수로 뛰던 때, 우리의 주말리그 왕중왕전과 같은 일본의 전국고교선수권 결승전이 열리면 국가대표팀 경기보다 관중이 많이 와서 도쿄국립경기장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도 초중고 주말리그가 계속 발전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결승전을 할 때 만원 관중이 될 그날을 기대해본다.

<홍명보 런던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