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우리에게 말을 걸다-아마존의 눈물 김현철 PD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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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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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영원할 것 같았던 예능의 독재였다. 방송사를 가릴 것 없이 예능이 우수수 쏟아졌고, 황금시간대에는 예능 간의 치열한 격돌이 허다했다. 사람들은 더 재미있고 더 신나는 프로그램을 쫓아 우르르 몰렸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지 난 겨울, 저쪽 구석에 묻혀 예능에 이를 갈던 다큐멘터리가 돌연 열풍을 몰고 왔다. ‘아마존의 눈물’은 한국 방송계에 예능 독재타도, 민주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는 이제 더 이상 대중적이지 못한 장르가 아니다. ‘아마존의 눈물’을 통해 사람들은 연령대와 상관없이 다큐멘터리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MBC 복도에 붙은 영화 '아마존의 눈물' 포스터

MBC 복도에 붙은 영화 '아마존의 눈물' 포스터 ⓒ 장윤경


이제 대중들은 다시 그들을 변화시킬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에 앞서 우리는 사람들이 단지 흥미로웠던 프로그램으로서 ‘아마존의 눈물’을 지나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뷰 거절하기로 소문난)김현철 PD에게 끈질기게 섭외를 요청한 끝에, 어렵게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김현철 PD와의 이 인터뷰를 통해 ‘아마존의 눈물’의 문화, 콘텐츠적 측면에서 재조명하려 한다. 더불어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실제 다큐멘터리 PD의 생각을 전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원시라는 이름의 ‘문명’에 대하여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었어요. 행복의 개념에서 볼 때 문명과 야만을 가른다면 그들이 가장 행복한 부족, 문명화된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했었죠.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었어요. 행복의 개념에서 볼 때 문명과 야만을 가른다면 그들이 가장 행복한 부족, 문명화된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했었죠.” ⓒ 정하늘


- ‘아마존의 눈물’이 극장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몇몇 부족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모자이크 또한 없앴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이런 차이점을 통해 대중들에게 TV판과는 다르게 극장판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단 좀 밝게 가고 싶었어요. TV판에서는 원시의 모습보다도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 문제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어둡게 느낀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엔 원시 그대로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아름답고 밝은 분위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 아름다운 곳과 그곳의 사람들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말이지요. 모자이크를 없앤 이유는 그 모습 그대로의 부족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기준에 의해 불편하다는 이유로 ‘모자이크’란 또 다른 옷을 입힌거잖아요. 그 때문에 아마존의 부족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싶기도 했고요.”


-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이라는 기준에서 원시 부족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은 낮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 이윤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현실에서 아마존의 경제적 가치를 위해 이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현실에 ‘아마존의 눈물’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 원시의 모습이라는 것이 우리의 과거 모습이잖아요. 그러면서도 사실 미래의 모습이기도 해요. 만약 지구에 환경적으로 대 재앙이 닥친다면 오히려 그보다 더 못할수도 있죠. 저희는 원시를 지켜보면서 대중들에게 ‘우리가 문명을 통해 얻은 것이 많지만 잃은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라는 사실을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우리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두려움’이란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남들보다 못 가진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남들을 이겨야 한다는 두려움 같은 것들이요.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 아마존의 눈물 제작진의 바람입니다."


- 한국판 ‘아마존의 눈물’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 음,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가지 ‘개발’이란 명목 하에 훼손되는 자연이 많다고 생각해요. ‘개발’이런 것 자체가 외부의 누군가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 자신들의 의지나 목소리가 반영되기란 쉽지가 않거든요. 개발 당하는 주체들의 입장을 외부에서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면 결국 소외되겠죠.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아마존의 눈물’은 한국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 같아요."


한국 속의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속의 한국

사실 수익을 내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정답은 아니에요. 시사성과 시청률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시사성이 맞죠. 소외된 곳을 찾아가서 기록하고 사회의 화두로 올리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진짜 역할이에요. 시사성을 갖춘 동시에 시청률도 높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사실 수익을 내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정답은 아니에요. 시사성과 시청률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시사성이 맞죠. 소외된 곳을 찾아가서 기록하고 사회의 화두로 올리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진짜 역할이에요. 시사성을 갖춘 동시에 시청률도 높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 장윤경


- ‘아마존의 눈물’을 초점으로 맞추었을 때, 프로듀서가 직접 느끼는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시장의 가능성은 어떠한지 궁금해요.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원래 ‘공영성’이라는 보호막 하에 시청률에서 굉장히 자유로웠거든요. 그런데 이번 ‘아마존의 눈물’같은 경우는 방영된 이후 하나의 문화코드가 되었어요. 심지어 ‘3I’라고 아마존, 아바타, 아이폰을 모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죠. 다큐멘터리 피디로서 정말 기분이 좋아요. 다큐가 전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고, 모든 가족이 모여서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가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죠. 또한 다큐멘터리가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책 뿐만 아니라 DVD 등 다양한 상품이 제작되었으니까요. 공영성의 의무감이라는 한계를 넘어 수익성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 주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측면에서 다큐멘터리가 한 단계 발전 했다고 봅니다.”


- 한국 다큐멘터리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한국 다큐는 ‘스토리’ 위주에요. 한국인들이 드라마를 좋아하잖아요. 다큐에도 그런 스토리가 있어요. ‘아마존의 눈물’만 보더라도 거의 부족민들의 이야기 위주로 진행이 되었어요. 이런 점에서 한국 다큐는 훨씬 편안하게 볼 수 있고 감정이입도 쉽죠. 그런데 외국은 그렇지 않거든요. 외국 같은 경우는 생물을 찍으면 생물의 특징과 같은 정보 위주가 많아요. 사실 저도 한국인인지라 제가 봐도 외국 다큐는 좀 밋밋해요. 심심하고 지루하기도 하고요. 물론 모든 것을 스토리로 풀어내려면 한계가 생기죠. 그러나 감정적인 면을 잘 살려서 오히려 메시지를 더욱 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한국 다큐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와 같은 거대 자본력을 가진 특정 선진국의 방송사들이 세계 다큐멘터리 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가 세계화에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듣고 싶어요.

“ 방금 언급한 특정 방송사들은 투자규모도 어마어마하고 제작기간도 훨씬 길어요. ‘아마존의 눈물’ 촬영 시 독일 촬영팀을 만난 적이 있어요. 우리와 비슷한 주제였는데 무려 3년 동안 촬영한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한 다큐멘터리를 오랜 시간 공들여서 제작하면 확실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죠. 몇 년 전부터 제작환경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한국에서 몇 백 억의 지원금, 오랜 자료조사와 긴 제작기간 같은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그렇다고 해서 꼭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이 원하는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다고 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대중들과 먼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죠.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이 비교적 빠듯한 제작환경에서 만들어낸 다큐멘터리들이 세계시장에서 점차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저는 이런 점에서 희망이 있다고 봐요. 가장 중요한 것은 다큐를 직접 만드는 제작진들의 의식의 변화와 더불어 투자하는 단체의 지원도 함께 따라주는 것이에요. 어느 한 쪽만 잘한다고 바뀌진 않는 것 같아요." 


제 2의 ‘아마존의 눈물’ 프로듀서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 다큐멘터리 PD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다큐PD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러 다니는 직업이에요. ‘아마존의 눈물’처럼, 어딘가에 소외받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거나, 그들에게 꼭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거나 할 때 우리가 그들을 찾아 가는 거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매력이에요. 노숙자에서부터 대통령까지, 일 년에 천 명 도 만날 수 있는 직업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매 순간 배운다는 점이 정말 좋죠." 
 

 

- 김현철 PD가 직접 느끼는 우리나라 다큐PD의 현실적 한계나 고충은 무엇이 있나요?

“ 시청률의 벽이 있어요. 다양하고 새로운 주제를 시도해보고 싶지만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악’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는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 이유로 한계에 부딪힐 때가 종종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좀 걱정이죠.”


- 다큐 PD가 되기 위해 지망생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

“ 가장 중요한 핵심은 ‘왜 이 사람이 이 프로그램을 만드느냐’거든요.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자신만의 브랜드, 시각이 있어야 해요. 이 말은 결국 스토리텔링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죠. 개성 넘치는 시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한 그림에 맞춰서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세심하고 상상력도 풍부해야 하죠. 또 보통 수준 이상의 목숨까지도 걸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해요. 욕심도 많아야하죠.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러나 자기의 의도대로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 할 수 있는 훈련을 얼마나 하느냐,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그의 ‘Another reality’


- 김현철 PD에게 다큐멘터리란?

“ A reality에 대한 Another reality다: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를 나만의 시각을 가지고 봐요. 그러면 이 현실은 내 눈과 마음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가공해내죠. 이것이 바로 나의 다큐멘터리에요.”


- "김현철 PD님, 꿈이 뭐에요?"

“꿈이요 ? 피디요. 제 꿈은 계속 피디에요. 영원히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어서 무언가를 전달해낸다는 것, 그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인터뷰를 마친 김현철 PD, 잠시 들러주신 김진만 PD

인터뷰를 마친 김현철 PD, 잠시 들러주신 김진만 PD ⓒ 정하늘
"피디님, 원래 인터뷰 잘 안해주시잖아요 왜 저희는 허락하셨어요?"
"대학생이니까요. 학생은 해줘야지. 하하."

비록 어설프다 하더라도 '뜨거운 젊음의 도전'을 응원하는 김현철 PD. 그 역시 젊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꿈꾸는 사람임이 느껴졌다. 김현철 PD에게서 우리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다큐멘터리를 발견한다. 그는 오늘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또 다른 세계로 향한다. 그대들도 기꺼이 동행하겠는가? 그럼 지금부터 다큐멘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글/장윤경, 정하늘(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