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범진용 개인전 : 걷는 식물 The Walking Plant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범진용 개인전 : 걷는 식물 The Walking Plant

분야
전시
기간
2024.04.12.~2024.07.14.
시간
[주중] 오전 11시~오후 6시 [주말 및 공휴일] 오전 11시~오후 6시 30분
장소
경기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요금
3,000원 (카페 이용 시 관람 무료)
문의
031-942-4401
바로가기
https://www.whiteblock.org/%EC%A0%84%EC%8B%9C/view/4557343

전시소개

얽힌 기억의 교차점


범진용은 세계의 안팎을 관찰하고 엮어내는 것에 능하다. 외따로 떨어지거나 후미진 곳에 존재하는 것들을 살펴 회화로 재현하면서도,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발견하여 슬쩍 가미하는 면모를 보여 왔다. 그렇게 금세 사라져 버릴 꿈의 흔적부터 인적이 드문 장소를 산책하며 마주하게 되는 버려진 풍경까지 면밀하게 번안한 바 있다. 이름 모를 잡풀과 그 속에 감춰진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에 치중하던 작가는 근래 들어 주변인이 등장하는 기억에 초점을 맞춰 나간다.


가족과 지인을 대상으로 삼은 인물 시리즈는 소중한 이에 대한 부재와 애도의 기억에서 발화되었다. 작가는 < 까마귀 꽃밭 >(2020)을 먼저 그렸다. 세 명의 검은 인물, 온갖 꽃과 풀로 뒤엉킨 배경, 진하고 어두운 색채와 거친 붓질로 혼재된 화면에는 그날 그 순간의 짙고 묵직한 감각이 산재한다. < 금자씨 >(2021), < 나옹 >(2022), < 수덕사 >(2022)와 같이 뒤이어 그려진 그림에서는 대체로 자연을 뒤로 한 채 홀로 춤추고, 걷거나 서있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모호한 얼굴을 하고 화폭 중앙에 선 이들은 작가의 이면을 투영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마음을 내비친다. 그리움이 곧 그림의 원천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 기억의 외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기실 사진은 우리를 명징한 기억으로 안내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작가의 작품에서도 사진으로부터 기억을 복기하는 과정에 익숙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섬세하게 형태를 묘사하는 방식과 빼곡히 채운 붓질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쉽사리 휘발되거나 얽히는 기억의 속성을 반영하듯 최근에는 형상을 재현하는 것에 매이지 않고 다소 가벼운 표면을 일구어낸다. 단일한 기억의 경로를 확장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를 위한 실험적인 시도들은 작가의 시선이 한층 더 추상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변곡점이 되었다. 변화의 양상을 들여다보자.


작가 본인을 포함하여 6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 인물 >(2023)은 각기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의 기억을 한데 모아 결합한 것이다. 캔버스에 나란히 늘어선 기억들은 아끼는 지인과 식사했던 특별한 날에 대한 총체적인 표상이면서도, 선형적으로 쌓이는 기억의 층위를 병치하려는 시도이다. 이어 대형 캔버스 천에 그려진 < 취한 밤 >(2023)도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떠도는 기억들을 얹어내면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하단에 그려진 고양이는 당시 그 장소에 부재했던 다른 기억 속 존재를 덧붙인 것이며, 인물과 배경 역시 서로 부자연스럽고 기묘한 관계를 가진다.


작가가 조각난 기억을 가공하는 과정은 초기에 꿈의 세계를 그리던 방식과도 유사하다. 꿈속의 파편을 취사선택하였듯 흐릿한 기억에서 식별된 일부만이 비선형적 연상방식에 따라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주변인들에게 여러 장의 사진을 받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본인의 기억과 접목할 수 있는 것도, 전혀 관계가 없는 것도 있다. 다수의 사진에서부터 시작된 기억은 서로 연결되는 복잡한 구조의 틈에서 그 경로를 달리한다. 중심 뿌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갈라져 나오는 과정에서 결국 주체가 모호한 다차원의 세계를 생성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범진용의 그림은 시공간을 다소 벗어난 데다 타인의 기억까지 불러온다는 점에 있어 초현실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 기억과 기억을 직조하는 과정은 거의 자동기술법¹에 가깝다. 그래서 이제 작가는 풍경을 그릴 때도 현시점에서 벗어난 과거의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기억을 대하는 태도가 기존의 작업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되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초반의 풍경 작업과 달리 형태와 색채에 있어 더욱 환상적으로 완성된 화면을 마주할 수 있다.

 

삶의 흐름에 따른 이주의 궤적, 그리고 그 길목에서 마주했던 풍경과 사람에 대한 기억까지. 만남과 교류 속에서 형성된 연대감은 작가의 세계를 완성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는 스스로를 ‘걷는 식물’과도 같다 말한다. 우리는 모두 얽힌 경로에서 교차하고 있다. 기억을 이고 진 채 이따금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몸을 움직인다. 이곳에서 그 길을 개척해 나가는 작가의 지난 4년의 흔적을 만나고, 또 다른 경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김진영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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