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바식당 대신 현장 식당은 어떨까요
매체
한겨레 신문
기고일
2020.07.28.
담당부서
홍보담당관(044-203-2046)
담당자
최선옥
붙임파일
함바식당 대신 현장 식당은 어떨까요


여름이면 벼농사를 지으시는 어르신들을 돕던 유년시절 기억이 선하다. 벼와 퍽 다르게 생긴 풀도 있지만, 제법 비슷하게 생긴 풀도 있었다. 어린 눈에는 벼와 잡초를 구별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풀들을 잘 가려내어 솎아 주어야만 벼가 더욱 풍성하게 자라 가을날 황금빛 들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말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도 벼농사에 들이는 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말인 듯 아닌 듯 구별하기 쉽지는 않지만 골라내 주어야 하는 말이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함바식당 같은 말이다. 얼마 전 식당가에 걸려 있는 간판을 보고 아직도 함바식당이라는 말을 쓰느냐고 했더니, 동행했던 젊은 직원 말이 자신은 함밥집인 줄 알았단다. 공사 현장 인근에서 저렴하지만 푸짐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어서 함께 밥을 먹는 집 정도의 의미인 줄 알았단다. 함바식당은 일본어 한바(飯場, はんば)에서 온 말로, 건설 공사 현장 등에 임시로 지어놓은 식당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현장 식당이라고 다듬어서 쓰기를 권하고 있으나, 여전히 함바집, 함바식당이 많이 쓰이고 마치 우리말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난해 한글날을 즈음해서 국립국어원에서 꼭 가려 써야 할 일본어 투 용어 50개를 골라 발표한 적이 있다. 분빠이하다, 나가리, 쇼부, 쿠사리처럼 일본어에서 왔다는 느낌이 강한 말도 있고, 망년회, 구좌, 익일, 가불처럼 우리말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운 일본식 한자어도 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빼앗겼던 시기를 지난 직후부터 이런 말들을 솎아 내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해왔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벼 사이에 숨어 자라는 풀과 같이 가려내야 할 말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공공 영역에서 이러한 말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견습 직원, 버스 대절, 수취인 불명, 가처분 대상. 관공서에서 많이 보았던 표현에도 일본식 한자어가 많이 들어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어떤가. 주유는 만땅으로 하고, 노래를 부르다 삑사리를 내며, 여름엔 나시를 입고, 가죽 제품에 기스가 나면 가오가 안 선다고들 한다. 우리말에 섞여서 익숙하게 쓰이는 일본어 투 용어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른 언어를 써야 하는 공공기관과 언론에서 먼저 나서서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쓰려는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 수습 직원, 버스 전세, 받는 이 불명, 임시 처분 대상이라고 쓰면 의미가 더 잘 전달된다. 주유는 가득, 노래를 신나게 부르다 보면 음이탈이 나기도 하며, 여름엔 민소매를 입고, 가죽 제품에 흠집이 나서 체면이 안 선다고 우리말을 쓰면 말맛이 더 살아난다. 많은 국민을 대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공공 영역에서는 이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더욱 신중하게 써야 할 것이다. 공공언어를 통해 쉽고 바른 우리말이 더욱 널리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의 한국어 가사를 전세계 팬들이 열광적으로 합창하고,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등 세계로 뻗어가는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의 현장을 볼 때마다 우리말과 한글의 중요성을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된다. 문화의 뿌리에 바로 말과 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다채롭게 가꾸는 것이 곧 우리 문화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길이다. 뒤에 올 세대에게 풍성한 우리말과 활짝 피어난 우리 문화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쭉정이만 남은 우리말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을에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여름 농사 때 부지런히 풀을 골라내는 것과 같은 노력을 게을리할 수가 없다.
공공누리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문화체육관광부 "함바식당 대신 현장 식당은 어떨까요" 저작물은 "공공누리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