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 제 9대 장관 김종덕

언론기고문

학교로 간 오페라
기고일
2015.06.20.
게시일
2015.06.22.
붙임파일
학교로 간 오페라

예전에는 영화관이 거의 유일한 문화체험 공간이었다. 즐길 거리가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던 시절, 학교에서는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으레 학생들의 머리를 식혀준다며 단체로 영화 관람을 시켜주곤 했다.학교 밖으로 나왔다는 설렘을 안고 캄캄한 극장 안에 들어가 큰 스크린을 마주하게 되면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벤허` `닥터 지바고` `로미오와 줄리엣` `사운드 오브 뮤직` `러브스토리`…. 이제는 고전이 된 명작들은 이렇게 여러 세대의 학생들이 거쳐본 영화들이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시절, 스크린에 펼쳐진 영상들은 흔치 않은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느끼게 해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에는 문화란 곧 영화의 다른 말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오늘은 반 전체가 오페라를 보러 간다고 하셨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떠밀려가 보게 됐던 오페라 `토스카`. 나는 그 공연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아직도 그 오페라를 가장 사랑한다. 오페라를 즐겨보게 된 지금도, 가끔씩은 내가 만일 조금만 더 일찍 오페라를 접했다면 내 꿈은 미술과 영상이 아니라 음악과 오페라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 세대에 비하면 지금은 확실히 `문화의 시대`가 된 것을 실감한다. 이제는 영화관뿐만 아니라 공연장, 전시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문화가 모든 지역과 계층, 우리 사회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고 하긴 힘들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융성위원회는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하고 적어도 한 달에 하루만이라도 평일에 가족과 함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전국 1800개 넘는 문화시설과 프로스포츠 경기장에서 무료 또는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다양한 지역에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공연`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지난 5월 27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찾아가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작은 오페라 공연이 한 중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일상적인 학교 공간이 문화예술을 선보이는 새로운 장소가 된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 강당으로 찾아온 오페라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은 코믹하고 유쾌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각색한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공연에 집중했다.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눈을 반짝이며 공연에 빠져들던 많은 학생들 중에 내가 처음 오페라 `토스카`를 보고 느꼈던 감동을 함께한 친구들도 분명 있었으리라 믿는다.

문화는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지 않으면 가깝게 느끼기가 쉽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문화를 접한다면 그 사람은 나중에 더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이와 같은 경향은 사회 전반적으로도 창의력과 상상력을 증대하여 경제 성장에도 밑거름이 된다.

`피가로의 결혼` 중에는 백작부인과 하녀 쉬잔이 부르는 `편지의 이중창`이라는 곡이 나온다. 이는 영화 `쇼생크 탈출`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곡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앤디는 스피커를 통해 교도소 전체에 들리도록 이 노래를 튼다.

수감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홀린 듯 음악에 빠져드는데, 수감자 레드는 이때를, "가사가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워서 모두에게 자유를 느끼게 했던 순간"으로 회상한다. 문화는 이렇듯 누군가에게 행복이 되고, 감동이 된다.

학교로 찾아가는 작은 오페라, 지역 문예회관을 활용한 전막 오페라 공연, 학생 대상 할인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문화예술 장르와 혜택을 학생 곁에, 우리 국민 곁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