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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 제 11대 장관 김종덕

언론기고문

책은 국가의 격을 결정한다.
기고일
2015.11.23.
게시일
2015.11.23.
붙임파일
책은 국가의 格을 결정한다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1년이 됐다. 이 정책을 책임지고 추진해온 부처 장관으로서 `공공재로서 책과 출판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정립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서 소비자에게 `과도기적인 불편`을 끼친 것에 마음이 쓰인다. 출판계와 소비자단체들과 협의를 통해 할인율을 최대 19%에서 15%로 낮춰 `가치로 평가받는 도서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는 진일보했지만, 그 때문에 "책을 덜 사게 됐다" "출판사 매출이 줄었다"는 반응도 있다.

다행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최근 조사에 따르면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난 1년간 신간 가격은 6% 정도 떨어지고, 지역 서점 매출은 상대적으로 조금 늘었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목록도 신간이 90%를 차지해 무분별한 도서 할인 경쟁 폐해까지 조금 줄어든 듯하다. `도서정가제`가 바라는 독자와 서점, 출판사 간 `상생` 길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궁극적으로 책은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의 대상이 돼야 한다. 콘텐츠 질(質)에 따라 합당한 가격이 매겨져야 하고, 그 가격대로 팔려야 더 좋은 책, 더 경쟁력 있는 출판사와 서점이 나온다. 물론 그것의 최종 수혜자는 독자이며, 좋은 책을 많이 읽는 독자가 늘어날수록 출판계도 탄탄해진다.

출판 생태계가 이런 선순환 구조 속에 놓이려면 각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먼저 출판사는 책값 거품부터 걷어내 합리적 가격을 정해야 한다. 출판사를 포함한 유통사는 시장질서(도서정가제)를 흔드는 변칙 판매를 지양해야 하며, 서점은 출판사와 함께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렇게 3자가 상생의 길을 걷는다면 정부도 출판 수요 창출과 지역 중소 서점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1981년 자크 랑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도서정가제 시행을 발표하면서 "당장의 이익에 가려서는 안 될 `책의 문화적 특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선언했다. 책이 제대로 대접받는 국가와 사회는 건강하다.

우리 국민의 문화 유전자 속에도 책의 가치를 알고 이를 소중히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로 알려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등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전쟁 폐허를 딛고 반세기 만에 출판 강국이 된 것도 한민족 특유의 `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우수한 출판문화 DNA가 IT 시대를 맞아 또 한 번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 유수 도서전에서 한국의 전자출판 전시장이 단연 인기다. 국내 한 중견업체는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에 교재용 플랫폼을 수출할 정도다. 아동도서 분야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볼로냐국제도서전에서 우리 그림책들이 본상인 라가치상 5개 부문을 모두 휩쓸어 `출판 대한민국`의 위력을 보여줬다.

책은 한류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제공하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이야기(스토리)를 기반으로 드라마와 영화, 음악과 춤, 게임이 탄생하고 그 성과를 다시 책으로 집약하면 해외 시장에서 우리의 한류는 위력을 발휘할 것이고,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정부도 내년에는 2017년부터 추진하는 `제4차 출판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 한 해 동안 출판·도서유통업계, 출판 전문가, 학계, 언론계, 소비자 등 각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선진국의 강점을 바탕으로 전자책 개발과 케이북(K-Book) 확산에도 총력을 기울일 작정이다.

책은 지식과 정서를 담는 소중한 그릇이자 모든 문화의 원류이기도 하다. 국민 모두가 그것을 소중히 하는 일이야말로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격(格)을 높이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