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의 내 인생의 책] ⑤ 칼의 노래-김훈
매체
경향신문
기고일
202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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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최선옥
붙임파일
[황희의 내 인생의 책] 칼의 노래 김훈 / 절망이 만들어낸 영웅


흔히들 삶을 전쟁터에 비유하곤 한다. 삶의 고단함과 생존의 위험함을 내포하는 듯한 그 비유를 들을 때면 마음 한쪽이 씁쓸해지곤 한다.


우리 민족에게 널리 알려진 전쟁영웅은 이순신 장군이다. 나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다라고 했던 이순신의 말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보름여 만에 피란을 떠나며 국민의 삶을 더욱 깊은 도탄에 빠트렸다. 나라가 멸망 직전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이순신은 옥포해전부터 노량해전까지 스무 번이 넘는 전투를 치르고 승기를 잡았다. 이순신에 대한 백성들의 환호와 신뢰는 두터웠던 반면, 도망간 왕은 전쟁영웅에 대한 질투와 두려움을 숨기지 못할 만큼 허약했다. 왕의 시기는 역모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져 이순신은 옥고를 치르게 된다.


이순신이 부재한 전란은 연전연패 상황이었다. 조정은 다시금 이순신의 출정을 명령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명량으로 떠난 그는 노량에서 그토록 무거웠던 갑옷을 벗으며 무인다운 죽음을 맞는다. 그의 사즉생 각오 이면에는 살아 돌아간다 해도 왕의 칼에 죽을 수도 있다는 허무함, 왕의 의심으로 인한 정치적 험준함을 감내하기 어려울 거라는 예측도 컸을 것이다.


왕이 버린 나라를 지키려는 수장이자 가족을 지키지 못한 가장이기도 한 이순신의 고뇌를 추적하는 칼의 노래는 결국 한 인간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느끼는 뼈저린 절망이 어떻게 영웅을 만들어나가는가에 대한 씁쓸한 고백이다. 전쟁은 오로지 아군과 적군만이 있는 세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이순신의 승리는 그 어떤 적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아니라 자신 또한 적의 적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어서였다.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적과 적이 있을 뿐, 그러한 세상은 얼마나 각박하고 위험할 것인가. 그러니 삶은 그저 비유만으로도 절대 전쟁터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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