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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현정, “미성숙한 내면의 발견이 치유의 시작”
게시일 2014.06.27. 조회 1871

“우리는 김현정의 작품에서 그녀의 이중(二重)의 자아(自我)를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아를 묘사하기 위한 타자(他者)이고, 하나는 자아가 연기한 역할이다. ……자아에 대한 인식과 탐색이라는 각도에서 보면, 김현정의 작품은 전형적인 모더니즘 스타일이다. 세계에 대한 인식과 탐색이라는 관점에서 말하면, 그것은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김현정이 채택한 재료와 방법은 전형적인 전통 스타일의 공필화(工筆畵)이다. 이로써 김현정의 그림이 예술비평 용어 가운데 전통,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구분 자체가 의심을 가질 만하겠지만, 아마도 김현정의 그림은 하나의 신(新) 스타일의 도래를 예고한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 총감독이며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예술학과의 펑펑(彭鋒, Peng Feng) 주임교수가 김현정이란 젊은 화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내린 파격적인 평가다. 그 당사자는 정규적인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혼자서 익혔다. 어릴적부터 사진이나 그림을 똑같이 모사하는 재질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당해내지 못한다’고.

 

김현정 작가의 첫 전시회 '묘사와 연기'가 아트링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위택환)

▲ 김현정 작가의 첫 전시회 '묘사와 연기'가 아트링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위택환)

 

그의 청춘시절은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무살에 모델로 데뷔하여 영화배우, 탤런트로 활동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아니 끓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붓을 잡고 5년여 동안 몰입한 끝에 김현정 씨(35)가 첫 개인전을 열었다. '묘사와 연기'란 주제로 갤러리 아트링크(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6월 23일 시작돼 7월4일까지 열리는 그의 작품전은 독특한 주제와 창조적인 기법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나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등에 열연을 펼쳤던 연기자에서 작가로 변신한 인생역정부터 특별하다. 배우생활 10년이 된 2009년 그는 우울감 등으로 배우활동을 잠시 접고 심리치료를 받았다.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인형치료법의 하나로 토끼를 닮은 자신의 '내면 아이'((inner child) '랄라'를 만났고, '랄라'를 통해 그는 심리치유를 마쳤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내면 아이’ 랄라와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랄라와 주고받는 교감, 그 과정에서의 다양한 정서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속 랄라는 또 하나의 김현정인 셈이다.

 

작가는 내면아이를 형상화한 점 외에도 그림의 일부에 자수를 활용하는 '화주수보'(畵主繡補) 화법,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비단을 붙여 수묵이 배어 나오게 한 뒤 비단에 그림을 그리는 '쌍층'(雙層) 화법 등을 최초로 시도하여 작품에 반영했다. 미술사, 미술이론, 미술품 감정 등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며 고민한 끝에 나온 작업 방식으로 기존에는 볼 수 없던 화법이다.

 

전시장에는 15점이 내걸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린아이들의 불안을 달래주기 위해 머리맡에 빵을 놓아둔 사연을 형상화한 '바케트 십자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주제로 한 '랄라와 소녀상' 등이다. 또 연꽃과 잠자리로 여름날 서정(抒情)을 극대화한 '여름 빛깔', 어두운 감지에 화려한 금니(金泥 : 아교풀에 갠 금박가루)로 그린 초충도(草蟲圖) 등도 있다.

코리아넷은 김현정 작가를 만나 짧지만 결코 간단치 않은 인생과 작품 세계에 대해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김현정 작가의 첫 전시회 '묘사와 연기'가 아트링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위택환)

연기자 가운데 그림을 그리는 '엔터테이너'의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배우이면서, 화가이면서, 글까지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인생의 연륜이 그리 긴 편은 아닌데 이토록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연기자로 생활하면서 나의 내면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를 주제로 한 연극 '나비' 를 할 때였다. ‘나비’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었고 그만큼 분위기가 어두웠다. 순회 공연을 약 3년 간 이어가면서 나비 속 캐릭터를 계속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세상이 점점 어둡게 느껴졌다. 계속 우울한 생각에 빠졌고 세상의 어두운 면만 보게 되면서 일상 생활조차 어려움을 느꼈다.

이와 더불어, 배우로서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화를 못 내는 것이었다. 연기를 지도해 주었던 선생님이 '현정이 너는 화를 못 낸다'라던 지적을 해 주었는데, 엄청난 충격이었다. 배우로서의 기본기를 갖추지 못 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감정 표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토끼인형 '랄라'와의 인연이 인생에서 상당한 영향을 준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좋다는 가톨릭 상담심리봉사자과정의 교육과정을 알게 돼 들어보기로 했다. 시작 단계에서는 잘 배워서 동료들이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상담 과정을 통해 내면의 '내'가 성장하지 못 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특히, 어렸을 때 인형을 갖고 놀아본 적이 없었다. 두 살아래 동생에게 모든 걸 양보하느라 나의 욕심을 기꺼이 포기했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난 별로 인형을 좋아하지 않으니까'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었다. 지금이라도 온전히 나만의 인형을 가져보기로 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인형 가게를 찾는다는 자체가 나름의 도전이었다. 도전 속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인형이 바로 토끼 모양의 '랄라(Lala)'였다. 작고 소소한 일이 엄청난 행복과 기쁨으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은 힐링 강의도 하고 힐링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들에게 이렇게 성숙하지 못한 스스로의 내면을 발견하는 데서 진정한 힐링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고, 그런 계기를 통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됐다.

 

전통 동양화 바탕에 토끼 '랄라'를 집어 넣은 상상력이 파격이다. 어떤 배경에서 나왔나?

 

작품을 구상할 때 랄라를 항상 옆에 두고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랄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여기서 느껴지는 게 뭘까?'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뭘 말하고 싶지?' 물어보기도 하고 대답하기도 한다. 결국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인 셈이다. 랄라를 통해 그림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내 감정을 표출하며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담겨진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감정은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이를 여러 방면으로 표출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랄라는 자연스레 그림 속에 들어가게 됐다. 누군가가 나의 그림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면 좋겠다.

 

그림속에 복잡미묘한 감정과 심리가 투사되어 있어 보인다.

 

감정 표출과 화내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찰나에 중국 청조 초의 문인이자 화가였던 명 왕실의 후손 '팔대산인(八大山人, Badashanren, 1625년경~1705년경)'이란 인물을 알게 됐다. 그는 그림에 자신의 분노를 그렸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분노 표출과 건강하게 화내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작품에 옮기게 됐다. 건강을 다시 찾게 됐다.

어릴 적 학교를 자주 옮겨 다녔다. 보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어머니의 바람이 강했다. 친구를 사귀거나 함께 놀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다 언니이기 때문에 ‘의젓함’을 강요받았다. 내면아이(inner child)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약하고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자 숨기고 싶은 부분이다. 이런 내면아이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존재하며 소중한 요소라는 걸 설명하고 싶고, 이러한 심리적 주제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하나도 하기 어려운 연기와 그림을 병행해서 하고 있다.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어렸을 때부터 주위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는 종종 들었다. 특히 세필화(細筆畵)에 능했다. 칭찬받을 때 기분이 좋아서 그림을 자주 그렸지만 제대로 미술 공부를 시작할 기회는 뚜렷이 없었다. 그러던 중 스무살에 청바지 ‘스톰’ 광고 오디션에 캐스팅돼 방송계에 데뷔했고, 한국방송(KBS) 드라마 ‘광끼’(1999)의 진달래 역을 맡으면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연기에도 재미를 느꼈다.

 

김현정 작가가 자신의 작품 '랄라와 소녀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위택환)

▲ 김현정 작가가 자신의 작품 '랄라와 소녀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위택환)

 

연기와 그림은 묘한 공통점을 공유한다. 대중과의 소통을 추구한다는 맥락에서 일치하며 메시지를 정제, 정화해서 표출한다는 부분도 유사하다. 이들을 모두 노련하게 표출하고자 하는 나의 욕심에서도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글, 그림, 연기 등 여러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었다.

 

2008년부터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치바이스, 리커란 등 중국화 거장들의 작품 세계에 공감할 수 있었던 배경은?

 

가톨릭 문화예술인 모임에서 이동천(李東泉) 선생(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별초빙연구원, 미술품감정전문가)을 알게 된게 인연이었다. “갖고 있는 것(소질)을 다듬어 가라”는 이 선생의 조언이 힘이 됐다.

 

치바이스(齊白石, Qi Baishi, 1864~1957)는 문인화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고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다 몸도 허약했다. 목공 일로 생계를 잇다가 서른살이 넘어 독학으로 그림에 발을 디뎠다. 그의 자서전에는 미술 분야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을 순 없었지만 물체를 똑같이 묘사해 내는 특기가 있었다고 쓰여 있다. 나도 똑같이 그리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교과서 속 석굴암의 불상 사진을 똑같이 그린 나의 그림을 어머니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 교수님은 그가 그림을 바라보았던 정신세계를 잘 배워보라고 권해주셨다.

 

리커란(李可染, 1907-1989)은 치바이스의 제자이면서 그의 정신을 잘 계승한 화가다. 그가 정리한 '화론'을 읽었다. 연기의 세계와 너무나도 비슷해 놀랐다. 진정성에 대한 그의 글에 엄청난 공감을 느꼈다.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이렇게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에 임하고, 작품을 만든다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잠자리 천국.

▲ 잠자리 천국.

 

전시품 가운데 애착이 가는 작품은?

 

크게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우선 '잠자리 천국'은 배접지 위에 스케치를 그리고 비단을 붙이는 독특한 방식인 '쌍층 화법'을 사용했다. 전통 의상학과에 다니던 당시에 배웠던 기술들을 응용해서 개발했다. 이 방법은 여러 번에 나누어 완성할 수 없고 한 번에 완성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컸던 작품이다. 어려운 만큼 애정이 느껴진다.

 

바게트 십자가.

▲ 바게트 십자가.

 

두번째로 '바게트 십자가'는 내면아이를 양육하는 데 대한 중요한 포인트를 갖고 있다. 2차세계대전 때, 피난처에 있었던 아이들이 잠을 못 잤다. 내일도 굶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내일 먹을 빵을 미리 머리 맡에 놓아 주었더니 아이들이 잠을 잘 잤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은 위로와 위안, 휴식만 주어지면 자신감과 긍정적 마인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잘 담아낸 작품이다.

 

벌써 가을바람.

▲ 벌써 가을바람.

 

마지막으로 '벌써 가을바람' 작품을 소개한다. 나는 이제 배우로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더 이상은 화려하고 젊은 여배우의 역할을 맡기 어려워졌다. 대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쇠락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정취를 느끼고 싶다. 작품 속에서 꽃술이 져서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통해 쇠락한다는 것의 쓸쓸함과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 이 작품은 구상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려 기억에 남는다.

 

첫 전시회인데 짜임새 있고 완성도가 높게 느껴진다.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향후 계획은?

 

연기자로서 한 작품이 호평을 받았을 때 다음 작품은 더 잘해야 겠다는 욕심과 부담감을 느끼듯 어렵다. 나의 역할을 통해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동시에 도움도 주고 싶다. 일단 현재는 11월에 예정된 '삼인행(三人行)' 전시를 위해 전력투구 하고 있다. 중국 예술세계에 백남준 선생 작품과 함께 대선배이신 이왈종 선생과 전시회를 열 수 있다는 점이 무한한 영광이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위택환·이승아 코리아넷 기자
whan23@korea.kr

 

김현정 작가가 자신의 작품 주제인 '내면아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 위택환)

▲ 김현정 작가가 자신의 작품 주제인 '내면아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 위택환)

전시회 관련 연락처 : 02-738-0738
김현정 작가 블로그 : http://khj_lpe.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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