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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
  •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

  • 분야

    전시

  • 기간

    2018.03.31 ~ 2018.06.17

  • 시간

    09:00-18:00 (관람 종료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 장소

    경기 | 김중업박물관

  • 요금

    무료

  • 문의

    031-687-0909

  • 바로가기

    http://www.ayac.or.kr/museum/exhibit/exhibit_info_view.asp?p_idx=15

전시소개

 

 

건축가 김중업은 6 25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하여 강의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던 중 1952년 유네스코 주최로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 대회에 참석하여 세계적인 건축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를 만났다. 당시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에 있던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에서는 현대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탄생하고 있었고, 김중업은 아틀리에의 일원으로 총 12개의 작품에 참여해 320여 장에 달하는 도면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하게 새길 수 있었다. 이 시기 그가 참여했던 작업을 살펴보면, 김중업 건축의 시작점을 확인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건축이 서구 모더니즘 건축을 직접 받아들이는 한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전시는 김중업의 작품 세계와 한국 현대건축의 기원, 그리고 르코르뷔지에의 후기 작품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중업 건축 여정을 시간 순으로 쫓아가며,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 근무 당시 참여했던 작품이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르 코르뷔지에 재단과 협력하여 김중업이 그렸던 도면 전체를 목록화하고, 그중 주요 작품의 원본 자료 123점을 대여하여 전시한다. 전시 공간에서는 이틀 도면 전체를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한편,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과 아틀리에를 부분적으로 복원하여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김중업이 작고한지 30주기가 되는 해를 기념하여 기획된 본 전시는 한 세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면밀히 살피고 그 만남이 한국 현대건축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에서 조명하는 출발선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르 코르뷔지에

1887.10.6~ 1965.8.27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쥐라 산맥 부군의 라 쇼드풍에서 출생하여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국제적으로 활동한 건축가로, 본명은 샤를르 에두와르 잔느레이다. 라 쇼드퐁의 장식미술학교에서 장식예술을 익혔고, 그의 스승이었던 레폴라테니에가 권유하여 건축가로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건축에 도입한 젊은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의 사무실에 취직하여 파리에서 20세기 초반의 새로운 시대 흐름을 파악했다. 이어 그는 페터 베렌스 사무실에서 일하며 독일의 근대 건축 운동을 직접 경험한 뒤, 1911년 동방여행을 떠나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서구 고전건축을 살펴보았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스위스로 돌아와 모교에서 건축학을 강의하며 건축분야의 변혁을 위한 연구를 거듭하였고, 이중에는 돔 이노 주택 계획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활동무대를 파리로 옮긴 르 코르뷔지에는 화가 오장팡을 만나 순수주의를 접한 뒤, 함께 에스프리 누보를 창간하였고 이 잡지에 건축에 관한 글을 쓰며 르 코르뷔지에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유럽을 비롯하여 인도, 미국, 일본 등에 근대건축을 대변하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그의 초기작품인 라 로슈 주택, 사부아 주택, 사르쉬 주택을 비롯해서 후기 작품인 통상 성당, 마르세이유 집합주택, 상디갈의 주요 건물들은 오늘날까지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작품 설계와 더불어 그는 다양한 이론들을 제안했다.

 

그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를 통해 1920년대에 걸쳐 확립한 개념인 건축의 다섯 가지 요소를 발표했다. 또한 주택을 거주하는 기계라고 정의하며, 주거의 공업화와 대량생산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근대 도시의 문제점을 분석한 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여러 도시 프로젝트로 제안했다.

 

이런 점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아인슈타인, 조이스, 피카소 등과 함께 근대라는 시대를 이끌어 간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중업

1992.3.9~ 1988.5.11

 

김중업은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요코하마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 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에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 출신의 나카무라 준페이 교수가 있어 김중업은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 후 그는 동경에 있는 마쯔다 히라다 건축사무소에서 실무경험을 쌓은 뒤,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활동하였다. 6 25 전쟁 중인 1951년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하여 생계를 이어가던 중, 1952년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를 계기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 3년 2개월간 그를 사사했다.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일한 기간 동안 인도 샹디갈과 아메다바드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프랑스 파리의 자율 주택, 낭트 르제의 위니테 다비타시옹과 같은 주요 설계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 인해 한국 건축계가 놓친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의 흐름을 따라잡고자 애쓰는 동시에 동시대의 새로운 변화 또한 익히고자 매진했다. 1956년 파리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온 김중업은 귀국 직후 종로구 관훈동에 김중업건축사무소를 개설하고, 함께 일할 직원들을 모았다.

 

그의 설계사무소 영문 명칭은 르 코르뷔지에의 그것처럼이었으며 운영방식도 유사했다. 귀국 이후 김중업의 초기작품에는 파리 체류 당시 접한 모더니즘 건축 어휘들,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언어가 다수 드러나는데, 필그림홀 계획안, 명보극장, 부산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본관, 서강대학교 본관, 유유제약 안양공장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한국 전통건축에 대한 연구를 심도있게 진행했다. 그 성과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을 통해 모더니즘 건축과 전통 건축을 조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김중업은 이 작품 이후 제주대학교 본관, 진해 해군공간, 서산부인과 병원 등을 설계하며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쳐나갔다. 그러던 중 1971년 강제출국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 약 7년간의 시간을 보내게 되고 1978년 귀국하여 변화된 작품 경향을 보인다.

 

이 시기 김중업의 대표작은 육군박물관, 한국교육개발원신관, 태양의집, 부산충혼탑, 올림픽 평화의 문이 있다. 김중업은 말한다. 건축은 인간에의 찬가이자 알뜰한 자연 속에서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또 하나의 자연이다 라고.

 

프롤로그 전쟁과 피난, 꿈의 모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에서 전임강사로 교직생활을 시작한 김중업은 6.25 전쟁 발발 이후 1.4 후퇴 때 온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하여 여러 대학들과 부산공업고등학교에서 강의해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 부산에는 전란을 피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광복로 일대의 여러 다방을 안식처 삼아 서로 교류하며 암울한 시기를 버티고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김중업도 피난시절 광복로 일대 다방에서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와 교류하였으며,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시인 조병화의 패각의 집을 설계하기도 했다. 한편, 1952년 5월 한국정부는 유네스코로부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에 각 분야의 전문가 파견을 요청받았고, 정부는 자비참가자를 모집하여 문총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에 선발을 의뢰했다. 김중업은 대학시절부터 르 코르뷔지에를 동경했고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의 명예위원으로 베니스에 온 그를 만난 뒤 귀국하지 않고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가 있는 파리 세브르가 35번지로 향한다.

 

섹션1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

 

김중업은 1952년 10월 17일 르 코르뷔지에를 찾아가 자신의 명함을 전하며 다시 한 번 그의 아틀리에에서 일하고자하는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 당시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는 인도 샹디갈과 아메다바드의 프로젝트와 롱샹 성당, 라투레트 수도원, 자율 주택과 같은 작품이 설계되거나 시공단계에 있어 많은 일손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김중업은 테스트를 거쳐 그의 아틀리에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김중업은 상디갈과 아메다바드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프랑스 내에 설계되고 있던 파리 근교 뇌이에 위치한 자율주택, 낭트르제의 위니테 다비타시움 설계에도 참여한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은 파리 세르브라 35번지의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의 재현 공간으로 시작한다. 모들러 이론이 적용된 르 코르뷔지에의 개인 사무실 공간과 김중업이 일했던 아틀리에 공간 일부를 재현하였으며, 이곳에서는 김중업이 참여한 12개의 프로젝트, 320장의 도면을 한 장씩 넘겨볼 수 있다. 재현의 공간을 나서면 김중업이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에서 참여한 자율주택과 낭트 르제에 있는 위니테 다비타시옹, 그리고 롱샹 성당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섹션2 아메다바드, 세 개의 건축

 

아메다바드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 최대의 도시로 인도 면공업의 중심지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샹디갈 도시계획을 시작할 무렵 아메다바드에서 방직자협회회관, 사라바이 저택, 쉬만바이 저택, 쇼단 저택의 도면 일부를 작성했다. 참여 비중이 크지 않으나 이 경험이 김중업에게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일례로 김중업이 설계한 이경호 주택의 경우 쇼단 저택과 같이 파라솔과 같은 거대한 지붕 아래 건축물의 공간들이 들어가 있다. 전시의 두 번째 섹션에서는 아메다바드의 건물 중 세 개의 건물, 방직자협회 회관과 사라바이 저택, 쇼단 저택이 전시된다.

 

섹션3 새로운 도시 샹디갈

 

샹디갈은 인도 북부 펀잡 주의 수도로 1947년 펀잡 주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로 각각 분할되면서 인도에 속한 펀잡주의 새로운 수도 계획이 시작되었다. 이 계획은 르 코르뷔지에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르에에 의하여 진행되었는데 르 코르뷔지에는 샹디갈에서도 특히 북쪽에 위치한 캐피톨의 건물들, 의사당, 행정청사, 고등법원, 주지사관저 설계에 주력했다. 이 건물들은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 들어온 1952년 10월 무렵에는 이미 배치가 완료되어 있었고, 주요 건물들의 설계가 진행중이었다. 김중업은 1952년 11월 6일 행정청사 도면작성을 시작으로 샹디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1984년 출간된 자신의 작품집에서 이 시기에 대하여 샹디갈의 엄청난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는 뼈를 가는 제작의 세계에 몰입합 체험이 나에게는 건축에의 참눈을 뜨게 해주었다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김중업의 작품에는 샹디갈 캐피탈 건물의 몇몇 모티브가 자신의 건축언어로 새롭게 번안되어 사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 시기가 그의 건축세계에 미친 영향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섹션4 1857 김중업건축작품전

 

김중업은 1955년 10월 6일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내용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강 문제로 업무량과 사무실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가 발행한 경력증명서에 의하면 김중업은 1955년 12월 28일까지 근무하였고 1956년 2월 말 귀국하였다. 귀국 직후인 3월 5일 김중업은 종로구 관훈동에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홍익대학교에 출강하기 시작했다. 귀국 첫해에 그는 부산대학교본관. 명보극장, 건국대학교 도서관을 설계하였으며, 필그림 홀, 인천해무청사, 묵호해무청사 계획안을 진행했다. 김중업은 1년 가량 지난 시점인 1957년 4월 12일부터 30일까지 공보실 공보관에서 그 동안 진행한 작업들을 모아 김중업 건축작품전을 열었다. 당시 건축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전시감상이 언론에 실리기도 하였으며, 김중업은 이 전시에 대하여 서구적 조형정신을 동양적 조형전통 위에 올바르게 뿌리박음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건축에의 길을 장만해 보려는 노력에서 빚어진 이정표를 이라고 말했다. 전시의 네 번째 섹션은 1957년 4월에 열린 짐중업 건축작품전을 오마쥬하여 당시 출품된 김중업의 초기작품을 위주로 전시한다.

문화포털 02-3153-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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